스팀슨관(Stimson Hall)과 본관(本館, Underwood Hall), 신학(神學館, Appenzeller Hall)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스팀슨관은 1920년 완성되었으며, 건평 131.75평, 연건
평 414.56평의 석조 2층 건물로서 연세 캠퍼스에 최초로 세워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스팀슨씨(Charles M.Stimson)의 기부금으로 지은 것
으로, 대학본부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대학원과 대외협력처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1981년 9월 25일 문화재 사적 275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본관은 1924년에 본대학교의 전신 연희
전문학교의 창설자이며 초대 교장이었던 원두우(元杜尤) 박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형제인 죤 언더우드씨의 기부금으로 지은 것이다.
건평 209.74평, 연건평 876.38평인 이 4층의 석조 건물은 문과대학 전용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지은 대학 본부 건물로 총장실, 기획실, 교무처, 총무처 및 재무처에서 사용하고 있
으며 문화재 사적 2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국 매사츄세츠 피츠월드의 제일감리교회에 의한 기부금으로 1924년에 준공된 신학관은 현재 신과대학 전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평 131.34평, 연건평 471.59평의 석조 3층 건물로 문화재 사적 277호로 지정되어있다.
윤동주는 민족의 수난기였던 1917년 독립운동의 거점 북간도 명동에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1938년 봄 연희동산을 찾아 1941년에 문과를 마쳤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모진 형벌로 29세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가 이 동산을 거닐며 지은 시들은 암흑기 민족문화의 마지막 등불로서 겨레의 가슴을 울렸으며, 그 영향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1968년 11월 3일 그를 따르고 아끼는 학생, 친지, 동문, 동학들이 정성을 모아 핀슨관 앞 작은 언덕에 그의 시 한수를 새겨 시비를 세웠다.
과학관은 연세백년을 향한 마스터플랜 사업의 하나로 1982년 3월 착공하여 지하 1층, 지상 6층, 연건평 6,450평의 규모로 1984년 2월에 완공되었다. 과학관의 신축으로 연희관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이 분산되어 있던 이과대학의 모든 학과가 한 자리에 모임으로서 과학교육과 연구의 효율화를 기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학관은 교양교육과 기초교육 연구의 공간으로서도 역활을 하고 있다.
연세과학원은 지하 3층, 지상 4층, 연건평 4,208평 규모로 2000년 7월에 완공되었다. 이 건물 안에는 생물전공, 지구시스템 과학전공, 생화학전공, 단백질네트워크연구센터, 연세포로테움연구센터, 게놈기능제어연구관, 생명과학기술연구원, 지하수, 토양환경연구소, 환경지질연구정보센터, 동·식물사육실 등이 입주하여 생명과학과 환경지질연구 교육의 산실로 떠오르고 있다.
제2공학관은 공과대학의 질적 성장, 양적 확대에 따라 생긴 공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2년 4월 착공하여 1994년 3월에 완공되었다. 지하 2층, 지상 7층에 목탑층을 합쳐 연건평 4,424평의 규모이다. 무역협회를 비롯한 여러 기업체와 단체의 지원금, 동문들의 기부금으로 제1공학과 바로 옆에 들어선 제2공학관은 캠퍼스 내에 공과 대학 단지를 형성하는 단조가 되었다.
제3공학관은 공학대학 장기 발전계획에 의거, 1995년 6월 기공하여 1997년 7월 준공된 지하 2층, 지상 5층, 연건평 3,596평 규모의 건물이다. 제3공학관의 신축과 1,2,3공학관 연결통로의 시설로 공과대학은 하나의 단지를 조성한 가운데 보다 효율적인 연구와 교육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신촌 캠퍼스 입구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 산학협동연구센터인 연세공학원은 산학협동 계획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풀무원, 대우자동차, 삼성전자, LG그룹, 현대전자, 한국통신, 세풍 등의 기업체와 연세대학교의 노력이 모여 이룩한 결실이다. 1995년 8월 기초 토목공사를 시작하여 1999년 5월 6일에 개우너한 공학원은 지하 5층, 지상 4층, 연면적 20,216평의 대규모 건물로 공과대학 단지와 포스코 브릿지(POSCO BRIDGE)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공학원 내에는 산업체연구소, 학교연구소 등의 연구시설과 연세종합서비스센터, 정보통신처 등의 학교 행정시설 그리고 대강당
축구장으로 사용되던 자리에 1970년 8월 착공하여 1973년 3월 완공된 제 1공학관은 독일 정부의 후원금과 재단보조금으로 건축되었다. 1973년 4월 23일 봉헌식을 갖고 개관할 당시 공학관은 2층 건물이었으나 1980년 3월 지하 1층, 지상 5층에 목탑층을 합쳐 연건평 5,809평 규모로 증축을 하고 공학관 외부에 있던 전자공학과, 금속공학과, 요업공학과 등을 모두 입주시켰다. 1987년 또 한차례의 재증축 공사를 거쳤으며, 현재 공과대학과 공학대학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연세 백년을 향한 마스터 플랜’에 따라 1977년 5월에 착공 1979년 3월 30일에 준공을 본 중앙도서관은 오늘의 연세교육에 부과된 사명과 책임을 수행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며 연세학문의 발전과 문화창조의 원천이다. 본 도서관은 4,747평의 대지 위에 열람인원 4,600석, 장서소장능력 100만권을 목표로 세워진 연면적 5,210평의 건물로 1992년 증축되어 연면적은 5,856평으로 늘어났다. 지상 5층, 지하 1층, 옥탑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민간건축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화강석 석조건물이다. 특별히 미국 AID자금 1백만불을 무상원조 받아 도서관내 컴퓨터시설비, 냉난방 기계설치비 일부 및 도서관내의 모든 비품을 마련하였다.
연세대는 교환학생, 어학 연수생, 정규 유학생을 포함한 외국인학생수가 2002년 기준, 4329명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유학생에 대한 교내 공간 제공을 위해 설립된 글로벌 라운지는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 위치하며 전세계의 다양한 방송과 인터넷 뉴스를 직접 서비스하는 인터넷 카페의 개념이다. 이곳에서는 외국학생과 연세대학생이 직접 만나거나 LAN과 컴퓨터를 통한 온라인 만남을 갖기도 하며, 세미나 및 개인 작업등의 다양한 용도를 위한 방음장치의 세미나룸이 있다. 또한 재학생과 외국인 학생을 버디로 묶어주는 버디 프로그램 및 언어교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겸 의사 호레이스 앨런이 고종의 도움으로 서울 재동에 세운 왕립 의료기관이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이었던 광혜원은 개원
12일만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지금의 외교통상부)의 계(啓)에 따라 이름을 제중원(濟衆院)으로 바뀌었는데,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운영권이 넘어간 제중원의 부속 의학교 초대 교장 에비슨이 세브란스병원의 실질적 설립자다. 이후 1904년 9월 3일 서울 남대문 밖 복숭아골(지금의 도동)에
세브란스병원이 문을 열었다. 세브란스라는 이름은 병원 설립 자금 15,000달러를 기부한 미국 클리블랜드의 재력가 루이 세브란스에게서 따온 것이며 이 의료기관의 기원이 바로 광혜원이다. 세브란스병원과 거기 딸린 세브란스 의학교의 역사는 한국의 근대적 의료사의학사의 중추를 이룬다.
세브란스 의학교는 세브란스 연합 의학전문학교,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거쳐 1957년 연희대학교와 함께 연세대학교로 통합되면서 연세대 의과대학이 되었고,
세브란스병원은 두 대학 통합 뒤인 1962년 신촌의 현재 자리로 이전해 연세의료원의 핵심이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캠퍼스 내의 광혜원은 최초 설립된 광혜원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