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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개

연설문

창립 139주년 창립기념식사 2024.05.16

창립 139주년 창립기념식사

 

사랑하는 연세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연세대학교 창립 139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귀한 걸음 해주신, 존경하는 허동수 재단 이사장님과 이사님들, 이경률 총동문회장님과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내외 40만 연세 동문 여러분께 우선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물심양면으로 항상 수고해 주시는 교수님들과 직원 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학생 여러분, 이 기쁜 날을 함께 맞게 되어 무척 즐겁습니다.


1885년 봄, 제중원은 ‘제중(濟衆)’이라는 이름처럼 ‘대중을 널리 구하라’는 소명으로, 빛나는 우리 연세 역사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그 문을 연 힘은 언더우드, 에비슨, 알렌 선교사 등의 헌신과 사랑이었습니다.


언더우드는 ‘한국 선교 20주년(Twenty years of missionary work in Korea)’ 기념 연설에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새로운 나라가 완성되기 전에 죽더라도 “천국에서 그 모든 것을 바라볼 것(We, if not here, from there shall see it all!)”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그는 한국인들의 분투를 독려하고, 희망을 내다보았습니다. 우리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예견처럼 실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부단히 발전하여,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을 추동한 것은 무엇보다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는 그 교육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기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를 강조한 ‘연세 교육’은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끈, 선한 엘리트와 역량 있는 시민을 배출하였습니다. 불의한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가,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산업 역군, 민주화를 견인한 청년들, 블루오션을 개척한 창업가, 한국을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만든 주역들 가운데 우리 연세인들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연세 가족 여러분,

 

지난 세기 우리는 이렇게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류는 지금 그 성장 이면의 후유증과 다양한 글로벌 도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냉전 종식 후 안정될 것이라 기대했던 국제관계는 크고 작은 전쟁과 내전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감염병이 5년 주기로 반복되며, 심각한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며 발전의 방향을 점검하고, 위기를 대처해 나가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저는 근래 학계의 큰 과제가 된 ‘융합’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지혜를 모으는 것’, 그리고 그 지혜로 ‘널리 사람을 구하는 것’ 말입니다. 융합은 우리가 모르는 이웃들과도 서로 연대하여 서로를 널리 구하는 열쇠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연세는 두 가지 방향의 융합을 실천해 나가려고 합니다.


첫째, 학제 간 융합입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과 지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회문화, 기업활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한, 에너지 대전환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과 에너지원, 경제활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제가 취임식 때 말씀드렸던 하늘과 땅과 사람에 관한 학문을 두루 관통하는 교육과 연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학문의 ‘경계를 넘은’ 훌륭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Apoptosis’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가 괴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멸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용어를 제시한 존 커(John Kerr) 교수와 그 동료들의 논문은 무려 2만 4천 번이나 인용될 정도로 저명한 연구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apoptosis’가 무미건조한 과학용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커 교수팀은 개체를 살리기 위해 세포가 자살하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벅찬 기쁨과 함께 고민이 찾아옵니다. ‘이 현상을 도대체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여기서 의사도, 병리학자도, 생물학자도 아닌 인문학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그리스어 학자인 제임스 코맥 (James Cormack) 교수를 찾아가 자신들의 발견과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이 대화에서 ‘apoptosis’라는 철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과학용어가 탄생하게 됩니다. Apoptosis(ἀπόπτωσις)는 “falling off” 즉, 나뭇잎이나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입니다. 인류의 고전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생을 비유한 말이기도 합니다. 생물학과 의학의 본질인 생명현상을 인문학적인 해석으로 표현한 우아한 과학용어가 생겨난 것입니다.


연세가 추구하는 학제 간 융합연구의 철학은 인류의 지적 유산을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게 승화시키고 인류 난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연세대학교는 인류사회의 공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사회과학적 통찰과 과학적 진단, 의공학적 처방을 함께 하는 학제 간 융합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합니다. 개별 전공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이를 바탕으로 지혜를 모아 대전환 시대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역량을 배양하는 융합교육을 강화할 것입니다.


연세가 추구하는 융합의 두 번째 중요한 방향은 글로벌 융합 네트워크 구축입니다. 연세대학교를 선택한 수많은 국가의 유학생들은 연세의 글로벌 다양성과 인적 융합 역량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는 유학생 유치뿐만 아니라, 국제기구 및 세계적 교육기관과의 협력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3월 13일에는 교내에 아프리카연구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은 근래 급부상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중에서도 핵심 지역입니다.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과의 관계 증진은 연세가 글로벌 융합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도약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연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원이 매년 개최하는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의 의제와 지역을 확대하고 참여 인사를 다양화하는 데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연세대학교는 다양한 국제교류 협력을 통한 글로벌 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실현 등 인류사회를 위한 연세의 비전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미래를 함께 열어갈 연세 가족 여러분,

 

선교사들의 헌신과 기여로 탄생한 연세대학교는 이제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그 성장에 감사하며, 그 첫걸음에 새겨진 연대와 융합의 정신을 연세가 열어나갈 새 시대의 소명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것은 연세가 인류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학제간 융합과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등대가 될 것이며, 우리 서로가 널리 사람을 구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창립 139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연세의 역사를 개척해 주신 선각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연세는 세계를 잇고, 세계를 이끄는 우리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이 뜻깊은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외귀빈과 연세 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여러분과 우리 연세의 앞날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24년 5월 11일

연세대학교 총장 윤동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