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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인문학 산책] ‘나의 시대’를 살아가기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4-04-24

‘나의 시대’를 살아가기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



1992년 조교수가 되어 33년 동안 사회학을 가르쳐 왔다. 1979년 대학생이 된 이후로 45년 동안 사회학을 공부해 왔으니 사회학적 사유는 내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를 이룬다 할 수 있다. 나의 사회학적 시선에 잡힌 지난 45년 동안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나 홀로 사회’의 도래다.


나 홀로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1인 가구’이다. 서울을 예로 들면, 내가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80년 서울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은 불과 4.8%였다. 그런데 2000년에는 15.5%로 증가하였고, 2022년에는 무려 38.2%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서울의 1인 가구 비중 변화는 전국적인 추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지구적 차원에서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지역은 유럽이다. 스웨덴의 경우 2017년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덴마크, 핀란드, 독일도 1인 가구의 비중이 40%를 웃돌고 있다. 그 추세를 보면 우리나라는 가구 구성에서 유럽 국가들과 유사함을 보인다.


1985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공부를 이어간 내게 당시의 유럽은 낯선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가구 구성을 비롯한 여러 현상들에서 우리에게 서구사회는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니다.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정글 속에서 자기 길 찾기

사회학자로서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나 홀로 사회의 사회·문화적 기초를 이루는 개인주의다. 개인주의란 개인의 자율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 반대말이 공동체주의다. 공동체주의란 개인의 자율보다 가족·민족·국가 등 공동체의 결속을 중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개인주의는 개개인의 고유한 자율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한 쌍을 이룬다. 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서구 현대사회의 정치·사회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다원주의의 기반을 이뤄 왔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20세기 벽두에 남긴 말은 개인주의의 특징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옛날의 많은 신들은 그들의 무덤에서 걸어 나와 우리 삶을 지배하고자 하며 또다시 서로 간의 영원한 투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개개인 모두가 신(神)이 되는 사회, 다시 말해 개인주의·자유주의·다원주의가 사회·문화적 기초를 이루는 사회가 다름 아닌 현대사회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담론은 지난 20세기 초·중반의 개인적·사회적 실존주의 철학이었다. 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철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 속에 내던져진 실존적 개인의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움직이며 행위하는 복수의 인간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말을 건네고 이해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의미 있음을 경험할 수 있다.” 아렌트가 남긴 통찰이다. 자신과 타인에게 진정한 말 걸기와 이해하기는 인간의 존재적 조건이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20세기 후반 개인주의를 새롭게 분석한 이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다. 벡은 위험사회의 이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란 금융위기, 테러리즘, 기후위기 등 위험이 사회의 중심적 현상을 이루는 ‘후기 현대사회’를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위험이 개인적 차원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벡의 논리는 이렇다. 후기 현대사회의 등장과 함께 개인은 독립적 존재가 되지만, 그 독립은 새로운 대가, 즉 전문가에 의존하고 자신의 독립성이 위협받는 상황에 노출된다. 지금껏 사회적으로 규정됐던 생애가, 이제는 스스로 생산해야 하는 생애로 변화하는 ‘개인주의화의 증가’가 위험사회의 새로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개인들은 곧 사라질 것으로 이루어진 이 정글에서 스스로 명확한 전망을 세움으로써 자기의 길을 찾아야 한다.” 위험의 개인주의화에 대한 벡의 발견이다. 나 홀로 사회의 개인주의는 양면성을 갖는다. 한편에선 공동체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선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자신이 삶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맡게 된다.





지난 20세기와 오늘날 21세기에 나 홀로 사회 경향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 원인은 다양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대, 이혼·별거로 인한 가족 해체, 고령화에 따른 노인 독신가구의 증가, 그리고 젊은 세대의 비혼·만혼 추세의 강화 등이 주요 요인이었다.


이러한 나 홀로 사회가 갖는 사회 문제는 복합적이다. 그 원인들이 경제적 상황, 인구 변동, 개인주의 문화 등 다양한 만큼 나 홀로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 역시 다양하다. 1인 가구의 빈곤·일자리·안전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내가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고독감이다. 오늘날 청년세대에서 고령세대에 이르는 나 홀로 사회의 삶들이 갖는 공통적인 문제 중 하나가 사회적 고립이다. 어떤 이들에게 나 홀로 삶은 앞서 말했듯 자유를 선사한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한다." 나 홀로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이다. 혼자 살아간다는 쓸쓸함은 사회적 고립을 강화시키고, 삶에 대한 두려움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고립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의 행진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다. 특히 청년세대의 경우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따로’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이러한 도도한 흐름을 ‘나의 시대’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시대는 ‘미이즘(Meism)’의 시대다. 미이즘이란 내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의’ 이념이자 철학이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인식론적 천동설’이다. 우리 인류는 21세기 과학기술 혁명의 진전으로 사회변동의 속도가 빨라지는 와중에 개인의 자율성이 강화되는 ‘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나의 시대는 명암이 뚜렷한 시대다. 나의 시대는 ‘자기 계발 시대’다. 내 일과 여가, 욕망과 취향, 자존감과 임파워먼트(empowerment)가 가장 중요하다. 오늘날 나를 통하지 않는 그 어떤 개혁이나 혁명 모두 기실 무의미하다. '워라밸', '소확행', 절차적 공정성을 중시하고, 생애의 경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성해 가는 것이 나의 시대의 실존적 초상화다.


동시에 나의 시대는 앞서 말했던 ‘나 홀로 시대’다. 온라인에서 관계가 넘쳐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혼밥·혼술·혼영 등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하다. 나의 시대가 자유의 시대인 것만은 아니다. 인공지능·플랫폼·블록체인이 주도하는 디지털 대전환 속에서 정작 나의 삶이 불확실해 불안하며 분노를 자주 느끼는 것이 나의 시대의 내면적 풍경이다.


나의 시대의 도래는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가족이라는 제도가 쇠퇴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인류 사회에서 꾸준히 증가해온 1인 가구의 비중이 단적인 증거다. ‘나’라는 존재의 부상과 ‘우리’라는 가족의 쇠퇴를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공동체주의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나의 시대의 그늘이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나의 시대의 불가피성이 먼저 수긍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시대에 대한 성찰적인 태도다. 나 홀로 삶은 분명한 자유로움과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쓸쓸하고 고립된 삶이다. 바로 이 점에서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다. 우리는 ‘따로’ 그리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일궈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의 시대에 대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와 시민사회는 나 홀로 사회의 공고화에 대응해 사회·경제적 삶의 질을 개선할 사회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주거·일자리·안전 등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과제에 더해 개인적 대응도 중요하다. 나의 시대에는 자기 삶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자아의 성찰적 능력이 배양돼야 한다. 또 훼손된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할 수 있는 시민문화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자아의 성찰적 힘을 기르고 사회적 차원에서 연대의 시민문화를 일구는 것이 갈수록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거역하기 어렵다면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21세기 현재, 나의 욕망과 이익, 가치를 선행하는 것은 없다. ‘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 ‘나’로 시작해 ‘우리’로 나아가는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일궈 가느냐에 우리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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