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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Impact Makers] 새로운 생활 스포츠, 피클볼의 시대를 열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09-21

새로운 생활 스포츠, 피클볼의 시대를 열다

피클볼로 꿈꾸는 건강한 사회, 스포츠응용산업학과 허진무 교수

 

최근 몇 년 새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생활 체육이 있으니, 바로 피클볼이다. 미국에서 시작돼 국내에 들어온 지 10년이 채 안 된 신생 스포츠이지만 각 지역별로 동호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대한피클볼협회도 만들어졌다. 그 중심에 허진무 교수가 있다. 미국에서 11년간 관광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모교로 돌아온 그는 2016년 귀국과 함께 피클볼 보급에 앞장섰다. 불모지와 같았던 국내에 피클볼의 씨앗을 뿌린 지 7년째, 튼실하게 뿌리내린 피클볼을 보는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동안 쏟은 땀과 노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의 장점을 섞은 운동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피클볼은 그 역사가 깊다. 1965년 미국 시애틀의 한 해변가 마을에서 습한 환경으로 여름 야외 활동이 쉽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세 명의 아빠가 고안했다고 한다. 탁구 라켓과 비슷한 패들을 직접 만들어 배드민턴 코트에서 게임을 한 것이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탁구와 배드민턴, 테니스의 요소가 적당히 섞여 있는 피클볼은 배드민턴 코트에 네트를 낮추기만 하면 바로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라켓과 공만 있으면 되고, 규칙이 간단해 다른 라켓 스포츠에 비해 배우기도 쉽다. 특히 힘보다 눈과 손의 협응력, 반사 신경이 중요해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학에도 속속 피클볼 동호회가 만들어져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생활 스포츠로서 저변 인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허진무 교수는 이런 변화가 더없이 반갑다. 피클볼을 알리기 위해 각종 행사 부스를 찾아다니며 숱하게 발품을 팔았던 날들,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하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학교로 온 게 2016년 2학기였어요. 피클볼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라 ‘이게 무슨 운동인지’를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죠. 시니어 박람회나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피클볼 체험 공간을 좀 만들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학교에 수업을 개설해 학생들에게도 알려 나갔고요. 물론 저 혼자 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열심히 뛴 덕분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간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더 이상 나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리를 잡았어요.”


2019년만 해도 경기 고양, 경남 거창, 광주광역시 등 세 지역에만 있었던 동호회는 올해 기준 서울에서 제주까지, 20여 개로 늘어 전국을 아우르는 규모가 됐다. 우리 대학교에서 처음 시작된 대학 동아리도 해마다 증가세다.  

 


미국 ‘노인 올림픽’ 최고 인기 종목 


현재 미국에는 피클볼을 즐기는 인구가 8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도 미국에서 피클볼을 처음 접했다. 역사가 오래됐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도 피클볼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2000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가을에 유학을 갔어요.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며 초등학교 체육 교사로 파견을 나가게 됐는데, 직무 연수 과정에서 피클볼을 알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잊고 지내다 박사과정 때, 노인 복지관에서 다시 피클볼을 만났어요. 복지관의 중요 행사 중 하나로 지역 어르신들이 모여 하는 ‘노인 올림픽’이 있었거든요. 제가 3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행사 진행을 도왔는데, 그때 피클볼을 생활 체육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됐죠.” 


이후 본격적으로 피클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열리는 ‘노인 올림픽’에는 여러 종목이 포함됐다. 전통적으로 개인전 종목이 많은 수영과 육상이 대세를 이뤘고 그만큼 참가자도 많았다. 하지만 2008년 이후 피클볼이 노인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2014년 무렵에는 가장 참가자가 많은 종목으로 부상했다.   

    

“저도 결국 2014년에 라켓을 잡았어요. 그동안 농구와 배구를 즐겼는데 마흔 줄에 접어들면서 체력적으로 좀 힘들어져서, 대체 종목을 찾던 중에 딱 눈에 들어온 거죠. 직접 해 보니 사람들이 왜 빠지는지,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모교 부임과 함께 시작된 피클볼 대중화 노력

‘재미있고, 운동 효과도 좋은’ 이 새로운 스포츠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그는 국내에 몇 안 되는 피클볼 관계자들과 함께 대한피클볼협회를 만드는 한편, 학과 안에 정식 교과목으로도 넣었다. 학교에 마련된 배드민턴 코트를 활용해 피클볼 수업을 진행하며, 코로나 직전까지 매 학기 일반인들도 참여하는 피클볼 대회를 개최했다. 대회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가 몰려들어 등록은 일찌감치 마감됐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겨우겨우 최소한의 인원을 맞춰 대회를 치렀던 첫 번째 대회와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피클볼의 인기와 확산세를 그대로 보여 주는 현장이기도 했다. 


“고등학생부터 70대까지,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아주 다양해요. 그만큼 세대 간 교류가 활발한 운동이라는 뜻이죠.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 효과가 커요. 학교 체육이나 생활 체육으로 정말 좋은 운동이에요.”

 


중·장년층의 생활 체육 활성화, 노년기 삶의 질 향상과 직결

이처럼 피클볼이 가진, 생활 체육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한 그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간 ‘스포츠 관광 활성화를 통한 지역 사회 발전과 성공적 노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우리 대학교와 지역 대학 연구자가 함께 참여하는 ‘어깨동무사업’의 일환으로, 공동 연구를 통해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됐다. 

 


그는 목포대, 대구대, 제주대 등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며 중·장년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피클볼과 파크골프를 중심으로 노인들의 스포츠 관광 활동 참여 현황을 분석했다. 아울러 이러한 활동이 성공적인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스포츠와 관광은, 학문적으로 별개의 분야인 것 같지만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스포츠 관광이란 스포츠에 참여하거나 혹은 관전하기 위해 어딘가를 방문하고 관광하는 것을 뜻해요. 제 연구는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고요. 저 역시 피클볼을 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여했고, 그 지역을 여행하는 스포츠 관광을 즐겼어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국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피클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여러 지역에서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이 조성됐어요.”


중·장년층의 생활 체육과 스포츠 관광의 활성화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증진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노년기 삶의 질과 직결된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사회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건전한 여가 생활은 더없이 훌륭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운동,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는 삶의 활력소가 되고,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꾸려 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회 참여 기회를 증가시킨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다. 

 


생활 체육 기반의 지역 축제를 만들다 


그는 생활 체육을 기반으로 한,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 활성화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많다. 2017년에 ‘신촌 피클볼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종목을 확대해 다양한 생활 스포츠를 체험하는 장을 마련했다. 


코로나로 중단됐던 행사를 재개한 것은 지난해 5월, 연세로 ‘차 없는 거리’에서 ‘신촌 평생 스포츠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우리 대학교 체육계열 전공 학생 및 교수진, 학생 선수 등 300여 명이 참여해 피클볼, 축구, 럭비, 야구, 농구, 파크골프, 핸드바이크, 발레 등 8종목의 ‘체험 존(Zone)’을 마련했다. 스포츠를 주제로 한 이 독특한 지역 축제는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행사 내내 성황을 이뤘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이런 형식의 지역 연계 수업을 많이 했어요. 제 전공이 ‘이벤트 매니지먼트’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현장 경험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게 제 역할이기도 했고요. ‘우리가 하는 학문이 어떻게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를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어요. 피클볼 대회나 평생 스포츠 페스티벌 같은 축제는 그런 고민의 결과물인 셈이죠.”


그는 대학과 지역 간 연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미국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가 몸담았던 텍사스A&M대가 있는 지역은 전체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로, 그중 학생 수가 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학교가 지역 경제의 중심의 되는 전형적인 캠퍼스 타운으로, 그만큼 학교에 대한 지역의 자부심이 남다르다. 학교가 주관하는 행사에 대한 주민의 관심과 참여도도 높다. 관공서들과의 협업도 원활하다. 


그에 비하면, 같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해도, 서울에서 하고 있는 그의 새로운 시도는 벽에 부딪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는 생활 체육을 주제로 한 지역 축제를 계속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코로나 이후 침체된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나아가 스포츠 관광으로 확장해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활 체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운동을 즐긴다면, 더욱 의미 있는 소득이다. 

 


부인, 형, 형수님 모두 연세인인 동문 가족  

우리 대학교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에서 여가학을 전공하며 아칸소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인디애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인디애나대(인디애나폴리스캠퍼스)와 텍사스A&M대에서 각각 8년과 3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종신 교수 자리를 보장받았지만, 모교로 돌아오기 위해 미국에서의 안정된 이민 생활을 정리했다.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안에는 미주 총동문회 섭외국장을 지냈다. 교수 외에 그동안 가졌던 여러 대외 직함 중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일이다. 낯선 땅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저 연세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뭉쳐 나눈 따뜻한 마음은 타국살이의 외로움을 견디게 한 큰 힘이었다. 


“저에게 ‘연세’라는 이름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어요. 아내가 같은 학과 1년 후배고요, 형과 형수님도 동문이에요. 저는 그냥 ‘뼛속까지 연세인’입니다(웃음). 다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녀 공유하는 추억도 많고, 공감하는 것들이 많아서 좋아요. 연고전, 아카라카, 백양로, 용재관의 진달래꽃 등 얘기가 시작되면 끝이 없어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되다


20년 가까운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는 모교 강단에서 후배들이자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귀국을 결심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캠퍼스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변해 발전상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그가 꼽는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이다.


“학과를 막론하고 능동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아졌어요. 미래에 대한 계획도 제가 학교 다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세우는 것 같고, 이미 입학 때부터 목표 의식이 뚜렷한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전반적으로 학생들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것 같아요. 선배로서 아주 흐뭇한 변화죠.”


‘여가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공부해 스포츠 관광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은 후배들에게 더없이 좋은 롤 모델이다. 그는 앞으로도 학생들이 현장에서 연구와 교육, 봉사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한편, 일상생활에서 평생 스포츠 참여가 주는 유익함에 대한 연구도 이어갈 계획이다. 


피클볼을 어디서든 쉽게 즐기는 생활 체육으로 만드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그 목표를 위해 지난해 주어진 1년간의 연구년을 미국 조지아대에서 보냈다. 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소도시 아테네(Athens)는 피클볼이 활성화된 지역 중 하나로, 피클볼과 관련된 현장 경험과 연구를 하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곳으로 꼽힌다. 그곳에서 미국피클볼협회 지도자 자격증과 심판 자격을 취득했고, 피클볼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진행했다. ‘유학 기간을 포함해 미국에서 총 19년을 거주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사귄 미국인 친구가 18년 동안 만난 친구들보다 많은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피클볼에 흠뻑 빠져 지낸 시간이었다. 


그는 생활 체육 인구의 확대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피클볼이 아니어도 일상 속에서의 꾸준한 운동은 개인의 건강 증진을 넘어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피클볼은 그 수단 중 하나다. 다만 어떤 운동도 노동처럼 느껴지면 지속하기 어려운 법, 그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클볼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진짜 이유다. 

 

vol.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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