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독립운동가 이태준 의과대학 동창(세브란스의전 2회 졸업)의 기념관이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시에서 개관됐다. 몽골인들이 성스러운 산으로 기념하는 '자이산' 입구에 위치한 이태준 기념공원 내 몽골 전통가옥인 '겔' 형태의 15평 규모로 건축된 이태준 기념관에는 이태준 동창이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친필 서신과 이태준 동창의 세브란스 의학교 졸업사진과 학적부, 그의 선배이자 안창호의 의형제인 김필순 동창(세브란스의전 1회 졸업)의 사진 등이 진열돼 있다. 이태준 동창은 구한말부터 1921년 사망할 때까지 몽골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로 1883년 경북 상주 출신이며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11년 조국이 일제에 침탈당하자 선배인 김필순 의대 동창을 따라 중국 남경으로 탈출, 진료활동과 함께 중국 내 독립운동가와 교류를 갖는다. 이후 1914년 무렵 사촌누이의 남편이기도 한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과 함께 몽골 고륜(현재 울란바토르)으로 옮겨 동의의국(同義醫局)을 개업, 현지 몽골인에 대한 선진의술 전파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당시 몽골 국왕의 주치의가 되어 현지에 만연하던 화류병(매독) 퇴치와 예방에 큰 공헌을 하였다. 몽골 국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중국과 몽골 등지에서 활동 중인 항일 독립투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이태준 동창은 일제 경찰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소련 정부가 상해 임시정부로 전하는 독립운동 지원자금 운반책임을 맡아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데도 기여했다. 그러나 이태준 동창은 1920년 7월경 항일단체인 의열단 단장을 만나러 중국으로 가던 중 일제의 조종을 받은 러시아의 백위파 군에 체포되어 38세의 젊은 나이에 몽골 내 한 사막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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