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여인석 교수(의과대학 의사학과)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으로 우리나라 의료역사에서 여러 가지로 큰 공헌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것이 여성들을 위한 제중원 부녀과의 설치였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는 남녀간의 내외가 엄격해 특히 여자는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는 바깥 남자 만나는 일을 극도로 꺼렸다. 그래서 설사 질병에 걸린 경우라 하더라도 의료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자 의료인에게 진료받는 것을 기피했다. 특히 신체접촉을 꺼려 신분이 높은 집안의 부인들은 맥을 짚을 때도 손목에 실을 매어 의원이 방 바깥에서 그 실을 통해 느껴지는 진동을 통해 맥진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이러한 관습은 당연히 여성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여 여성들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물론 궁중에 의녀를 두어 여성들의 치료를 담당하게 했지만 이들은 수도 적고 전문적이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일반 백성들이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886년 7월 여의사 엘러즈 내한 이러한 상황에서 1885년 4월 10일 제중원은 문을 열었다. 이 새로운 의료기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여성들은 많지 않았다. 알렌을 비롯한 제중원의 의사들은 곧 조선의 엄격한 남녀 내외의 관습이 치료를 필요로 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치료를 받으러 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청진이나 촉진, 타진 등과 같이 몸의 일부를 노출시키거나 신체적 접촉이 많은 서양의술의 특성상 낯선 남자, 더구나 처음 보는 이상한 외모의 서양의 남자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쉽게 보이려는 조선 여성은 별로 없었다. 그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을 키워 죽는 경우도 적지 않았음을 알렌은 증언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지켜본 알렌은 여성을 위한 병원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조선의 여성들을 치료할 여자 의사들의 파견을 선교본부에 요청했다. 그 결과 1886년 7월 4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소속의 여의사 엘러즈가 조선에 파견되었다. 제중원 부녀과, 여성 병동 설치 엘러즈가 내한함으로 제중원에는 여성 환자들만을 따로 진료하는 제중원 부녀과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제중원에는 여성환자들의 입원을 위해 별도의 여성 병동까지 운영되었다. 엘러즈가 올 무렵 민비가 병이 났으나 남자 의사인 알렌에게 진료를 받을 수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러즈가 내한한 이후 엘러즈는 민비의 시의로 임명되어 민비뿐만 아니라 궁중의 귀부인들을 진료하여 큰 신임을 얻었다. 그 결과 엘러즈는 1887년에 정2품 정경부인의 작위를 받기도 했다. 엘러즈는 1887년 7월 감리회 선교사이자 육영공원 교사였던 벙커 목사와 결혼하였는데 결혼 직전에 다섯 살 된 여자 아이를 데려다 글을 가르친 것이 후에 정신여학교로 발전하였다. 엘러즈가 제중원을 그만둔 후에는 여의사 호튼이 1888년 3월 27일 내한하여 제중원 부녀과를 맡았다. 호튼도 엘러즈처럼 민비의 시의로 활동했다. 호튼은 1889년 초가을 8년 연하의 언더우드와 약혼하고 이듬해인 1889년 3월 14일에 결혼했다. 후에 호튼이 출산 후 몸이 약해져 제중원을 떠난 후에도 에바 필드와 같은 여의사가 계속 파견되어 제중원에서 여성들의 진료를 계속했다. 조선 여성 의사 양성 토대 마련 제중원을 통한 서양의료의 도입은 단순히 우리나라에 새로운 서양의 의술을 도입했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중원 부녀과의 설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합리한 관습으로 인해 그동안 마땅히 받아야 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조선의 여성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만든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서양인 여의사들에게 조선 여성의 진료를 맡길 수 없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조선의 여성들을 의사로 길러 내어 조선 여성을 치료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도 점차 설득력을 얻어갔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구체화된 것은 1930년대에 가서 홀 여사와 길정희 여사에 의해 여자의학강습소가 설립되면서이지만 제중원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의료가 시작된 것은 이러한 발전의 출발점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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