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의 특별한 다이어리
“너의 투병을 항상 응원하고 있어”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는 특별한 다이어리가 있다. 환자 한 명 한 명에 대해 오늘은 상태가 어떤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등을 담은 치료일지이자 병상에서 일어나길 기원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낸 일기. 세브란스병원 간호국의 목표인 ‘공감’과 ‘Family Engagement’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픈 가족을 보며 무력감을 느끼는 보호자와 중환자실을 슬프고 어두운 기억으로만 남겨두는 환자들.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중환자실 다이어리 작성을 생각해 냈다. 외국 지침 및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작성 지침과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1년에 이르는 준비 기간을 거쳤다. 김영삼 중환자실장과 김필자 팀장의 지원 아래 환자의 직업과 취미, 가족관계 등을 담은 ‘환자 소개란’과, 뒤이어 매일 치료 사항과 응원을 빼곡히 담아낸 중환자실 다이어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철저한 준비를 거친 만큼 반향은 컸다. 내과, 외과, 소아과, 신경외과 중환자실 환자를 위해 바쁜 가운데서도 예쁜 글씨로 주요 치료 기록과 응원의 편지를 적는 의사, 간호사, 약사, 전도사, 호흡재활 물리치료사, 영양사들을 보며 가족들도 환자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다이어리에 쏟아냈다. 고사리손으로 ‘아빠 힘내! 우리 퇴원하고 나서 스키장 가자!’라고 적은 어린 딸의 편지,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이 의료진의 편지와 함께 순식간에 수십 장을 채웠다.
이렇게 작성된 다이어리는 환자와 보호자가 중환자실에서 보낸 시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됐다.
다이어리를 함께 작성한 가족과 친구들은 ‘짧은 면회시간에 다 물어보지 못했던 환자의 세세한 상태까지 알 수 있게 돼 좋았다’, ‘나중에 환자가 일기를 보면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을 긍정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것 같고 회복에 도움 될 것 같다’,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의 애정과 성의가 느껴지고 환자에게 최상의 치료와 간호가 제공되고 있다는 확신이 느껴진다’라며 격려를 보냈다.
한편,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어린 환자들을 위해 심장혈관병원 중환자실에서는 소아심장 수술을 한 환아들을 중심으로 매일 정성스레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있다. 박한기, 신유림 교수(흉부외과학), 한민영 파트장을 주축으로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합심한 결과다. 바쁜 일과 중 겨우 짬을 내 작성한 다이어리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의료진들의 정성과 애정이 담겨있다.
심장이식을 받은 10살 혜주의 다이어리에는 ‘지금도 잠 잘 못 자고 불안해하는 혜주 곁을 지키면서 계속 살펴보고 있단다,’ ‘힘든 수술 후 상태가 안정돼서 너무 기뻐. 조금만 더 힘내서 병원 밖을 힘차게 나가는 날이 빨리 오길 기도할게’ 등 의료진의 응원이 수십 장 적혀있다. ‘항상 응원하고 있어. 집에 오면 예전처럼 재미있는 춤도 같이 추고 놀자’ 등 두 오빠가 정성스레 쓴 편지도 붙어 있다.
24시간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중환자실에서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데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박한기 교수는 다이어리에 휴대폰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찍어 붙일 수 있도록 포토프린터를 직접 사 선물했다. 간호사들은 바쁜 와중에도 매일 다이어리가 잘 작성되고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필요한 물품이 떨어지지 않게 수십 권씩 노트도 사다 두고, 매일같이 아이들을 위한 편지를 적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늘 굳어있던 부모들의 얼굴에 한 번씩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고 의료진은 한 번 더 펜을 든다.
한민영 파트장은 “다이어리를 작성하면서 의료진들도 힐링을 얻는다”라면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지속해서 다이어리 작성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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