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교가 소장한 『삼국유사』 파른본

하일식 교수(사학과)

언론에서 ‘파른본 『 삼국유사』 (연세대 소장)’ 소식을 종종 접했을 것이다. “희귀본 서적이 연세대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보물로 지정되었다”, “교감본이 나왔다.” 등을 포함하여, 올해 봄에는 『삼국유사』  도난품이 경매에 나왔다가 범인이 잡힌 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 삼국유사』 는 어떤 책이고, 세상의 주목을 받고 학계가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 대학교가 교감본을 발행・보급한 것이 어떤 의의가 있는지 알아보자.

『삼국유사』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은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一然)이 여러 곳을 다니며 평생 자료를 모으고 만년 에 군위 인각사에 머물며 완성하였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종종 혼동하지만, 『 삼국유사』 는‘유사(遺史)’가 아니라 ‘유사(遺事)’이다. 일연이 이런 제목을 선택한 것은 ‘사(史)’가 갖는 제약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사(史)’는 일정한 체제를 갖추어야 하고, 내용도 주로 국왕의 통치에 관련된 것으로 한정된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시대의 남겨진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이 제목을 통해 자신의 책이 ‘정사(正史)’가 아님을 스스로 밝혀 겸손함을 드러냈다. 그런 한편으로 정사에 넣기 어려운 설화와 신화, 종교적 이적(異蹟), 가난한 서민 이야기까지 거리낌 없이 소개하는 자유를 얻었다.

김부식의 『 삼국사기』 에서 찾을 수 없는 단군신화, 여러 지역의 전설 등을 『 삼국유사』 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서민, 부처님 앞에서 간절히기원하여 응답받은 사람 등이 많이 나온다. 역사 연구에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사료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 』는 고대사 연구자뿐만 아니라 문학・민속・불교・설화・서지 연구자들까지 소중히 여기는 자료이다. 그런데 더 파고들면 내용을 구성하는 문자를 따지게 된다. 현재 전해지는 『삼국유사 』의 문자들이 판본에 따라 다르게 인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임신본과 조선 초기본

그동안 널리 이용된  『삼국유사 』는 1512년(중종 7) 경주에서 간행된 ‘임신본’이었다. 경주부윤 이계복이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가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이전에 인쇄된 책자를 어렵사리 구하여 두 책을 다시 목판에 새겨 인쇄한 것이다.

이전에 인쇄된 책자란 1394년(태조3) 경주에서 만든 것을 말하는데 100여 년이 지난 뒤에 구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임신본도 몇 책 남아 있지 않고, 조선 초기본은 온전히 전해오는 것이 없다.

이미 국보로 지정된 조선 초기본은 책의 후반부 절반인데, 그나마 떨어져나간 페이지가 좀 있다. 그런데 사학과에 재직했던 고 손보기 교수의 유족(김서영 여사, 손명세 의과대 교수)이2013년에 조선 초기본  『삼국유사 』를 우리 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책은  『삼국유사 』의 앞부분 절반에 해당하는 데 빠진 페이지가 없고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특히 파른본에는 조선 초기본 어디에도 없는  ‘왕력 ’이 온전히 들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 대학교는 손보기 교수의 호를 따서 ‘파른본’이라 이름붙였고, 이 이름이 지금학계에 통용되고 있다. 이 책은 2015년에 보물 제1866호로 지정되었다.

우리 대학교가 낸 교감본

100여 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같은 책인데 내용에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혹은 단순히 “더 오래된 유물이 가치가 높다”고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른본 『 삼국유사』 의 가치는 시간이 오래된 데 그치지 않는다.

임신본과 파른본은 글자 차이가 많다. 기존 임신본에서 불분명한 글자들을 파른본은 선명하게 확인해준다. 글자 하나를 정확히 바로잡아 역사적 사실을 더 정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 삼국유사』 의 제일 앞부분인 ‘ 왕력’ 은, 임신본에는 뭉개진 글자나 애매하고 뜻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파른본을 통해 대부분 깔끔하게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1월에 우리 대학교 박물관은 『 파른본 삼국유사 교감』 을 발간하여 학계에 제공했다. 파른본을 축소 영인하고, 임신본과 대조하여 글자의 차이를 비롯하여 이체자(異體字) 등에 일일이주를 달아 현대 활자로 옮겼다. 교감(校勘)은 이런 작업을 말한다. 독자적 연구가 아니라 모두가 이용할 기초 자료를 만드는 일로, 개인의 실적과 무관하게 교내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므로 내가 맡았다.

임신본의 교감은 몇 종류 나와 있지만, 조선 초기본의 교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조선 초기본의 후반부 절반은 개인 소장자가 끝내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 대학교가 파른본 교감본을 발간하자 크게 환영받았다. 우리 대학교는 이를 학계의 연구자들에게 보급함으로써 연구・교육 기관으로서 충실한 소임을 다하였다.

“역시 연세대학교!”라는 평을 밖에서 듣는 것은 좋은 일이다. 7월 초 경상북도가 개최한 삼국유사 학술대회에서도 서지와 역사 연구자들은 파른본을 논의의 중심에 두었다. 이 자리에 나도 참여했었다. 지금 우리 대학교는 문화재청에 파른본의 국보 승격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다. 서대문구, 서울시를 이미 거쳐서 문화재청이 진행할 절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문화유산을 대하며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보물과 국보의 차이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무엇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금액으로 가치를 따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교가 국보 승격 신청을 한 까닭은 기증자의 뜻을 더 높이는 한편 연세의 자부심을 더하려는 차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