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60cm, 몸무게 24kg의 청년은 올해 2월 꿈에 그리던 학사모를 쓴다. 주인공은 생후 7개월부터 근육질환을 앓으면서도 학업에 열중해 ‘연세대 스티븐 호킹’이라는 별명을 얻은 신형진 학생이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역경을 이기고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연세대 호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졸업은 2002년 특수교육 대상자 특별전형으로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지 9년 만이다. 2005년 폐렴에 걸려 2년간 휴학하는 등 학사모를 쓰기까지 남들보다 2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12월 21일 오후 5시 백양관 새움터에서 열린 신형진 씨의 졸업 축하연에는 그의 졸업을 축하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가족인 어머니 이원옥 씨(64)와 아버지 신현우 씨(62)를 비롯하여, 아버지 친구인 신영수 교수(경영학과), 그리고 우리학교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 함께 뜻 깊은 자리를 축하했다.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축하객들을 맞이한 신형진 씨는 새움터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꽃바구니를 보고 상기된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이원옥 씨의 말에 따르면 그가 어젯밤 늦게까지 기말고사 과제를 수행하느라 다소 피곤할 것이라고 했지만, 표정에서는 피곤함을 엿볼 수 없었다. 신형진 씨는 생후 7개월 때 병원에서 척추성 근위축증(SMA) 진단을 받았다. 온몸의 근육이 평생에 걸쳐 천천히 마비되는 이 병은 근육이 말라붙으면서 온몸의 뼈가 휘어지고 그에 따라 격렬한 만성 통증을 수반하는 고통스러운 병이다. 이 병을 앓는 사람들 대부분이 20대 이전에 사망하지만 신 씨는 강남세브란스병원 강성웅 교수의 수술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도 초등학교 3학년 때 몸 전체가 마비돼 머리조차 가눌 수 없게 됐다. 그는 “공부에 매달리는 저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고생하면서 학교에 가느냐', '공부보다는 건강부터 신경 써라'는 말을 종종 했다”며 “만약 공부를 포기했다면 아프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대학생활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냈다. 매 학기 2, 3과목을 직접 듣고 시험을 치렀다. 2005년 미국에 방문했을 때는 폐렴 등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느라 26개월간 휴학하기도 했지만 휠체어와 눈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화상키보드가 달린 ‘안구 마우스 컴퓨터’를 이용해 학업을 이어갔다. 안구 마우스로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리포트를 썼고 불편한 몸이지만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직전 학기까지 평균 3.4점(만점 4.3)을 받아 학점도 좋은 편이다. 이처럼 신 씨가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가장 큰 힘을 준 사람은 바로 어머니 이원옥 씨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신 씨가 시련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 씨는 매일같이 서울 강남구 개포동 집에서 학교 강의실 앞까지 신 씨를 차로 태워 주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기를 수년간 반복했다. 집에 돌아오면 신형진 씨에게 안구 마우스 컴퓨터를 달아주었다. 이 씨는 “그나마 안구 마우스가 생겨서 다행이지, 그것이 없을 때는 밤새 아들 옆에서 교재인 원서를 들고 앉아 있다 졸아서 책을 놓쳐 발등을 찧기 일쑤였다”고 털어놨다. 신 씨의 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열정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우여곡절 끝에 일반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이 씨는 하루 종일 곁에서 도와야 했다. 그는 “아들 친구들의 공책을 빌려 복사해 주고 책장도 일일이 넘겨줬다”며 “공부할 동안 가래가 생기지 않도록 밤새 아들의 몸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뒤척여 주다 보면 창문이 훤해지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시험기간에는 복도에 책상을 갖다 놓고 아들의 조그만 목소리와 입술의 움직임에 의존해 답안지를 작성했다. 이 씨는 “문과 출신이라 수학기호를 잘 모르는데 시그마(∑)가 기호인 줄 모르고 부르는 대로 한글로 받아 적었다가 아들한테 혼나기도 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장애우 권익신장 지원 새움터(장애학생 쉼터), 아름터(시각장애학생 쉼터) 운영 신형진 씨가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된 데에는 우리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도 큰 몫을 했다.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장애학생들의 원활한 학업을 위한 편의시설과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교내 복지기관이다. 장애우의 권익신장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시작된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처음에는 2001년 ‘새아터(새움터와 아름터의 줄임말)’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새움터(장애학생 쉼터)’와 ‘아름터(시각장애학생 쉼터)’로 각각 불리고 있다. 새움터와 아름터의 운영은 여러 교수들이 모여서 장애학생 시설기금을 마련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는 장애학생지원센터로서 남형두 소장(법과대학)과 2명의 직원(최만규 차장, 이주희 전담직원), 2명의 조교가 행정, 시설, 장학 등 새움터와 아름터 운영을 맡고 있으며, 약 40여 명의 학생 도우미들이 돕고 있다. 새움터는 단순히 장애학생들을 위한 쉼터로써의 기능뿐만 아니라 교내 장애학생들을 위한 시설보완을 건의하고, 장애학생들의 수업을 위한 대필 서비스뿐만 아니라 기자재 대여, 도서관 이용관련과 기숙사 입사 지원 등 원만한 학교시설 이용을 위한 대부분의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섬김의 연세정신으로 더 많은 ‘스티븐 호킹’ 길러내자 안강현 학생복지처장은 장애학생들에 대한 행정 시스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의 도움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우리 장애학생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공부하고, 대학생활을 향유할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비장애학생들과 교직원 선생님들의 각별한 배려와 이해가 요청됩니다. 우리대학교가 창립정신을 진정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장애학생을 지원하는 정책과 제도,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한국 최고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연세인들이 우리 장애학생들을 최선의 배려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강영우 백악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비롯하여 우리대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장애우 복지를 위하여 크게 활약하고 있다. 우리대학교는 10여 년 전부터 장애학생을 특별입학제도를 통하여 받아들였고, 신영수 교수(경영학)를 비롯하여 많은 교수들이 척박한 장애학생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하여 큰 수고를 감당하여 오늘의 장애학생지원센터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연세인들은 섬김의 연세정신을 가슴에 새겨 미래의 복지사회를 이끌어 갈 장애우 학생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더욱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신형진 씨가 꿈꾸는 “나 같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더 많은 후배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망이 더욱 멀리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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