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등만 해야 해요?”
1등만 기억하는 잔인한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4등>
스포츠응용산업학과 이경은 강사
‘누가 그러던가, 애매한 재능이 제일 힘들다고. 희망의 끈을 놓기도 잡기도 모호한…’
이 영화는 ‘4등’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만년 4등만 하는 선수 준호의 이야기입니다. 이 선수에게는 고난과 역경만 있었을까요. 영화는 4등만 하지만 4등일 때 가장 빛났던 어린 선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감독은 왜 1등도 2등도 아닌 순위권 밖인 4등의 삶을 조명하였을까요?
영화는 코치 광수의 어린 시절로 시작합니다. 아시안 게임 유망주였던 광수는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이는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었죠. 그의 선수 시절은 오만과 자만으로 얼룩졌고, 술과 도박의 연속이었습니다. 후회와 아쉬움 속에서 광수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기록 나오고 메달 땄으니까 내는 안 건드렸지... 아 그때 좀 강하게 키웠으면 내가 더 많이 성공했을 기야.’ 이러한 그의 말은 실패를 남에게 전가하려는 갈망을 드러내며, 어린 준호에게 자신의 꿈을 투영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 또 준호에게 자신의 기대를 투영하려는 인물이 있습니다. 엄마 정애는 늘 4등만 하면서도 욕심 없는 아들이 불만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정애는 코치 광수를 소개받아 아들 준호에게 붙여줍니다. 광수는 ‘때리는 스승이 진짜 스승’이라는 신념 아래 욕과 체벌을 서슴지 않았고, 정애는 이를 방관합니다. 준호의 실력이 좋아지는 만큼 그의 몸과 마음엔 멍이 늘어갔죠. ‘다 너를 위한 거다’라는 말에 숨어 어른들은 사실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죠.
사진: 영화 <4등>
여느 날처럼 체벌과 욕설이 난무했던 훈련 도중, 준호는 뛰쳐나갑니다. 수영을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결국 ‘누군가를 위한 수영’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준호의 도망은 단순한 반항이 아닌 자신의 꿈과 자아를 위한 고백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준호가 수영을 그만둔다는 선언에, 엄마는 “내가 너보다 열심히 했는데 너가 무슨 권리로 그만둬?”라는 상처지만 어쩌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죠. 이때 그녀가 이토록 수영에 집착했던 이유를 알 수 있죠. 부모의 노력이 자식의 노력이 될 수 없듯, 부모의 꿈이 자식의 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4등>은 수영 영화이지만 비단 스포츠만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가까이서 겪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입니다. 1등이 되었지만 4등일 때 더 행복했던 아들과 처음으로 자식의 성공을 바라보는 엄마의 복잡한 감정을 통해, 작품은 개인의 내면적 가치와 가족 간의 이해를 심도 있게 탐구합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라는 말처럼, 영화는 아들 준호의 성장뿐만 아니라 엄마 정애의 성장을 담으며 서로 다른 관점에서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진: 영화 <4등>
이 작품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에 기획한 작품으로, 승리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직설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순위와 경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주제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 이면에 더욱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또한 물속에서의 유영과 색채의 미적 표현 등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을 강조해 관객에게 섬세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최근 2024 파리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8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며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매일 아침 메달 순위를 확인하던 저에게, 영화 <4등>은 깊은 반성을 안겨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스포츠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선수들의 헌신과 노력을 접해왔지만, 여전히 순위에 집착하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영화 <4등>은 우리가 스포츠와 경쟁을 바라보는 방식을 재조명합니다. 승리와 순위의 중요성에 압도되지 않고, 과정에서의 성장과 자기 이해의 가치를 되새겨볼 기회를 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여러분도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았는지 돌이켜보고, 경쟁의 진정한 의미를 재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화 <4등> (4th Place, 2016)
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준, 이항나, 유재상, 최무성
수상: 53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남자배우상, 1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심사위원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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