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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기본에 충실하기, 그 원칙을 지키며 걸어온 시간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4-02-23

기본에 충실하기, 그 원칙을 지키며 걸어온 시간

1,300만 영화 ‘서울의 봄’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의류환경학 93)



최근 극장에서 가장 눈에 띈 작품은 지난해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이다. 관객들과 만난 지 70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300만 명을 넘어섰고, 그 열기는 지금도 식지 않았다. 회사 설립 10년 만에 ‘천만 영화’를 탄생시킨 하이브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의 감회도 남다르다. 그는 “1,000만이라는 숫자도 의미 있지만, 영화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을 보여 주는 관객들이 많다는 점이 더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영화의 역사를 다시 쓰다

(사진 제공: 하이브미디어코프)


‘서울의 봄’은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작품이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의 9시간을 2시간 20분 분량의 영화로 재구성했다. 반란을 일으킨 보안 사령관 전두광과 이에 맞선 수도 경비 사령관 이태신의 팽팽한 대립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반짝 인기몰이 후 서서히 하향 곡선을 그리는 여느 영화들과 달리 ‘서울의 봄’은 개봉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 크게 위축된 영화계에서 ‘작품이 좋으면 충분히 관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 준 사례로도 꼽힌다.


“작품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제작자인 저를 비롯해 참여한 모든 사람의 바람이죠. 하지만 처음부터 저희는 수치 달성에 집착하지 않고, 영화를 잘 만들어 내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결국 중요한 건 영화를 잘 만들고 싶은 이들의 의지와 완성도에 따른 결과물이에요.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성적이었지만, 촬영 후 편집본을 보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올 수 있겠다’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1,300만을 넘었다는 건 세대 구별 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봤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 점에 더 의미를 두고 있어요.”



‘심박수 챌린지’로 표현한 젊은 세대들의 반응 흥미로워


‘잘 만들면 빠져들 수밖에 없겠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전 세대가 공감할 줄은 몰랐다. 특히 군사 반란 전후 시대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의 반응에 놀랐다. 이들은 영화를 보며 분노했고, ‘심박수 챌린지’ 같은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심박수 챌린지’는 영화를 보며 울분을 느끼는 순간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스마트 워치의 심박수가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소셜 미디어에 인증하는 것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나 일종의 놀이처럼 퍼져 나갔다.

 

“최근 젊은이들을 ‘공정 세대’라고 부르더라고요. 이 친구들은 공정하냐, 그렇지 않으냐가 판단 기준이 된다고 해요. 그래서 부당한 일에 대해 이전 세대보다 더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걸 스마트 워치의 심박수 측정 기능과 연결해 실험한 것도 재미있고요. 저는 스마트 워치가 없어서 몰랐는데, 요즘 세대의 특징을 보여 주는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작품 제작에 주력

(사진 제공: 하이브미디어코프)


2014년 하이브미디어코프를 설립한 그는 그동안 ‘내부자들’, ‘덕혜옹주’, ‘마약왕’, ‘천문: 하늘이 묻는다’,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번에 개봉한 ‘서울의 봄’까지, 유독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역사책 읽는 것도 좋아했어요. 특히 현대사는 ‘서울의 봄’처럼 감춰져 있던 것들이 많고, 가까운 과거여서 그런지 여러 사건의 흐름이 얽혀 현재로 이어지는 게 흥미로워요. 영화의 소재로 다루기 좋죠. 다만 한쪽의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사건의 흐름이나 각 인물의 선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자료 수집에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에요.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지만, 역사물이라는 특성에 맞춰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사실에 근거해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그만큼 한 작품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고 제작 여부를 결정하거나 감독의 제안으로 작품을 만드는 제작사도 있지만, 김원국 대표는 소재 발굴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울의 봄’ 시나리오도 김성수 감독에게 전달되기까지 4~5년이 걸렸다.


“좋은 영화는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시나리오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첫 단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작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기획 의도에 맞게 수정해 가며 완성합니다. 그렇게 대본이 나오면 이야기를 잘 연출해 줄 감독을 찾고, 배우를 모아 작품이 완성되는 거죠. 영화는 한번 공정이 끝나면 돌이킬 수가 없잖아요.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좋은 작품을 내놓기 전까지 신경을 쓰고, 그 이후의 성적은 운에 맡깁니다. ‘서울의 봄’처럼 보는 내내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진짜 어려운 작업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장르를 넘나드는 무한한 스펙트럼

영화 제작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마침내 ‘천만 영화’라는 영광스러운 성적표를 받았지만 그는 의외로 덤덤했다. “처음에 잠깐 좋았고, 그 후엔 다른 할 일이 많아 신경 쓰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계획된 일들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여러 편의 작품이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기획 단계에 있는 작품도 많다. 태국에서 ‘올 로케이션(현지 촬영)’으로 진행될 영화 ‘열대야(감독 김판수)’는 지금 한창 촬영 중이다. 그 역시 태국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 밖에도 1980년 전두환 정권 당시 시행된 언론 회유 공작 계획인 일명 ‘K 공작 계획’을 소재로 한 작품과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기 위한 극비 프로젝트를 다루는 작품도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7인의 사무라이’를 모티브로 한 사극과 공포물 ‘곤지암’ 후속편을 비롯해 시리즈물과 드라마 등 장르의 한계 없이 다양한 작품을 그려 내는 중이다.



OTT와 극장 영화의 공존 위해 ‘홀드백(유예 기간)’ 꼭 필요

영화 제작자로서 요즘 그의 고민은 이처럼 오랜 시간 공들여 내놓은 작품이 점차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극장 영화는 눈에 띄게 부진해졌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이 두 플랫폼이 슬기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가 제안하는 것은 ‘홀드백’, 즉 유예 기간의 강화다.


예전에는 극장용 영화를 OTT에서 보는 데까지 일정 시간이 걸렸다. 법으로 정해진 기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통상 10주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면서 이 관행은 무너졌다.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유독 심해요. 개봉 후 3~4주만 지나면 OTT를 통해 영화를 볼 수 있죠. 이렇게 바로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면, 누가 돈을 내고 극장에 가려고 하겠어요. OTT가 시대적 흐름이라고는 해도 극장 영화의 생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콘텐츠의 다양성이 줄고, 문화 산업의 근간이 무너집니다.”


‘홀드백의 법제화’를 강조한 그는 “정부와 국회의 관심을 바탕으로 투자배급사협회와 OTT 업계가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누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안건”이라고 말했다.


“물론 제작자들도 대중의 높아진 안목과 기대에 부합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죠. 기술적으로 ‘극장에 더 적합한 영화’라는 건 없습니다. 요즘은 OTT에도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가 많아요. 결국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연세에서의 기억

대학 시절 그의 꿈은 CF 감독이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대학생 광고 공모전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학교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혼자 합격해 졸업 때까지 방송국 엔지니어로 활동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농구장에서 한바탕 땀을 쏟았던 이야기, 전공과 진로가 달랐기에 오히려 학업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풍족하지도 않았지만, 저희 때는 그런 낭만이 있었어요. 교수님들도, 친구들도 모두 좋았고요. 제가 전공에 흥미를 못 느껴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더 편하게 다니기도 한 것 같아요(웃음).”


졸업 후에는 광고 회사에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광고 회사에서 영화를 수입하거나, 영화 광고를 찍던 시절이었다. AE 역할을 하던 그를 눈여겨본, 한 영화 수입사 대표가 그에게 영화 수입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영화 업계에 발을 디뎠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100년 이상 이어지는 제작사 만들고 싶어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가져와 극장에 거는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직접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영화 수입, 투자와 관련된 업무를 하며 업계를 잘 알고 있던 그에게는 충분히 도전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김원국 대표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드는 제작자’로서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그동안 특별한 방향을 정하고 회사를 이끌어 온 건 아니에요. 한 해 한 해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기획하고, 그에 걸맞은 대본 작업을 하면서 준비된 프로젝트를 촬영하는 식으로 차근차근 진행해 왔습니다. 그렇게 계속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본질에 충실하기’입니다. 영화의 본질인 시나리오를 잘 만들고, 제작 현장에 나가 도울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고 해결하고, 배급 마케팅 과정에서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제 그의 꿈은 하이브미디어코프를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영화 제작사로 만드는 일이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 일종의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이기도 하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다음 세대가 그 시스템 안에서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잘 제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김원국 대표.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좋은 작품’을 고민하는 그의 노력이 우리나라 영화 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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