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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레고를 통해 ‘놀이의 힘’을 전하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07-25

레고를 통해 ‘놀이의 힘’을 전하다    

‘레고코리아 최초 한국인 수장’ 레고코리아 정희영 대표(신문방송학 93)



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올 1월, 레고코리아의 대표로 선임된 정희영 동문도 그중 하나다. 학창 시절에는 넓은 세상을 꿈꾸며 우리 대학교의 국제화 프로그램을 알차게 이용했고, 졸업 후에는 스스로 설계한 진로에 맞춰 필요한 부분들을 전략적으로 채워 나갔다. 그 결과 ‘글로벌 기업의 대표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현실이 됐다. 1984년 레고코리아 법인이 설립된 이후 ‘최초의 한국인 수장’이자 ‘첫 여성 대표’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마다 과감한 결단과 도전으로 자신의 삶을 성장시켜 온 정희영 대표를 만나 그의 인생 여정과 회사 이야기를 들었다. 


글로벌한 교육 환경에서 세계 무대를 꿈꾸다

정희영 대표는 우리 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로 ‘연세’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자유롭고 진취적인 학풍과 다양한 국제화 프로그램을 꼽았다.


“지금은 많은 대학에서 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교환학생 제도가 있는 학교가 거의 없었어요. 우리 대학교만의 강점 중 하나였죠. 또, 국제학부가 있어 수준 높은 영어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외국인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도 많았어요.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저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학교가 없었어요.”


비즈니스 관련 분야로 진로를 정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국제화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국제학부에 개설된 영어 강의 수강을 비롯해 미국 UC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로 교환학생도 다녀왔다. 1년간의 미국 생활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들과 만난 것도 좋았고, 교수와 학생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강의실 분위기도 신선한 자극이었어요. 학교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게 나중에 유학을 결정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죠.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게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감사해요.” 


 


미국 유학 후 마케터로 새로운 출발  

졸업 후 그의 첫 직장은 무역상사였다. 1기 대졸 여성 사원이었던 그는 철강무역팀에 발령받아 3년 반 동안 해외 영업을 담당했다.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무역 상사 일은 재미있었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찾기 어려웠다. 많은 기업이 자생적으로 수출·입 능력을 갖추며 성장하고 있던 터라 상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 같았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업종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고,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다 찾은 것이 마케팅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꽤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회사에 다니는 동안 이력서도 많이 냈는데, 경력이 없으니 쉽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서 유학을 선택했죠.”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그는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직장은 그가 원한 ‘소비재 마케팅’은 아니었지만, 연관된 업무에서 경험을 쌓으며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후 영업, 광고 집행, CRM(관계마케팅), 제품 판매 등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를 익혔고, 마케팅의 기초를 탄탄하게 닦았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글로벌 소비자 가전회사로 이직하며 드디어 본격적 소비자 마케팅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10년간 근무하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주방·생활가전 마케팅 디렉터, 국내 세일즈 및 마케팅 총괄 상무를 거쳐, 국내 이커머스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2년간 일한 뒤 2018년 마케팅 디렉터로 레고코리아에 합류했다.


 


증강현실(AR) 등 신기술 접목한 제품 출시

브릭(Brick) 조각을 조립해 만드는 레고는 덴마크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완구 업체다. 레고그룹 안에서 레고코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매출액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혁신적인 제품이 출시되면 한국이 그 테스트 베드 역할을 담당한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IT 강국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단순한 조립을 넘어 새로운 기술과 결합한 혁신적인 제품이 속속 출시돼 레고코리아의 임무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9년 출시된 ‘히든 사이드’다. 레고 최초로 증강현실(AR) 기술을 접목한 히든 사이드는 레고 조립의 재미는 물론 앱을 연동해 유령을 잡는 디지털 게임까지 즐길 수 있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올 3월에는 ‘BTS Dynamite’ 세트를 출시해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미국의 방탄소년단 팬 두 명이 ‘레고 아이디어’에 올린 창작품이 제품으로 연결됐다. ‘레고 아이디어’는 레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품을 제안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10,000표 이상을 얻으면 본사의 심의를 거쳐 제품화된다. 


“방탄소년단이 한국 그룹이라 저희가 신제품 출시 기념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어요. 강남역, 판교 현대, 여의도 ‘더 현대 서울’ 등 세 곳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반응이 상상 이상이었어요. 외국인 방문객들도 너무 많아서 말로만 듣던 케이팝의 영향력을 실감했죠. 생각해 보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미국인이잖아요. 저희에게도 놀랍고 새로운 경험이었죠. 뿌듯하기도 하고요.”


 


손으로 만드는 과정 통해 얻는 특별한 경험 

신제품은 본사에서 개발해 전 세계에 동시에 출시된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다른 콘텐츠와 함께 선보인다는 것이 최근의 변화 중 하나다. 일례로, 8월 1일 출시되는 ‘드림즈’는 꿈을 소재로 한 것으로, 전 세계 수천 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사전 연구 조사를 진행해 만들었다. 


또한 ‘드림즈’는 제품이 나오기 3개월 전부터 이번 시리즈의 세계관을 담은 10편의 이야기가 만화영화 채널과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통해 방영됐다. 그 관심을 자연스럽게 실제 제품으로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어떤 게 유행하는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빨리 파악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웃음). 레고를 종종 유튜브와 비교하는데, 요즘 아이들이 디지털 미디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지요. 그래서 저희도 유튜버들과 협업해 제품 소개나 놀이법을 알려 주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미디어와 달리 레고는 손으로 직접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아요. 창의력과 유연성도 키울 수 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유대감도 커지고요. 조립하는 과정에서 실패도 해 보고, 그러면서 회복 탄력성도 기를 수 있죠. 저는 레고의 이런 요소들이 디지털 미디어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놀이 시간’은 어른들에게도 필요

레고는 어른들에게도 인기다. 전 세계적으로 성인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하고, 그 수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성인들을 위한 놀이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됐고, 어린 시절 추억을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 성인들이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트렌드에 따라 소비 시장이 커졌고, 자녀와 함께 취미 생활을 즐기며 유대감을 쌓는 부모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시절 레고를 가지고 놀던 3040이 주요 고객층입니다. 어떤 면에서 한창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는 세대이기도 해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많고요. 레고를 통해 어린 시절 그 행복했던 시간을 다시 떠올리는 거죠.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도 있고요. 예전에는 ‘논다’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는데, 이제 놀이가 중요한 시대가 됐잖아요. 레고를 통해 어른들도 긴장을 풀고, 다양성을 경험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자생적으로 생긴 온라인 커뮤니티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순수하게 레고를 좋아하는 분들이 모인 공간인데, 회원 수가 20만 명이 넘어요. 무척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요.”


이런 추세에 발맞춰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제품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인테리어, 식물, 자동차, 건축물, 예술 작품, 영화, 패션 등 주제도 다양하다. 성인 대상 제품은 브릭 조각 수가 훨씬 많고, 실제와 똑같다고 느낄 정도로 세밀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조립 후에는 특별한 장소에 전시하기도 좋아 활용 가치가 높다. 


집에서 가끔 레고를 한다는 정희영 대표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완성작은 액자로 만들어 걸었다고 한다.  


“제가 직접 만든 거라 그런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인테리어 효과도 있고요. 그게 성인 레고 제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아빠에게도 2개월 유급 출산 휴가를 주는 회사

이처럼 성인들을 위한 신제품 출시로 고객의 폭을 넓혀 나간 덕분에 레고코리아는 코로나 시국에도 성장을 거듭했다. 2018년 이전 4개였던 국내 공식 레고 매장 수도 지난해 말 기준 18개로 4배 이상 늘었다. 이 중 11개 매장은 2020년 이후 오픈했다. 모두 그가 마케팅 임원으로 합류한 후 거둔 빛나는 성과다. 


그는 코로나19로 국내외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에서도 다수의 신규 시리즈 론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온·오프라인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올해 1월 대표로 승진했다. 


레고코리아에서 처음 탄생한 ‘한국인’ 대표라는 점에서 그는 어깨가 무겁다.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도록, 좋은 선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국내에서 대서특필된 ‘레고코리아 첫 여성 대표’라는 점이 정작 레고그룹 안에서는 큰 화젯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회사 분위기가 자유롭고 유연해, 흔히 ‘유리천장’으로 불리는 차별적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인 만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의 친목을 위한 제도도 잘 마련돼 있다. 레고코리아에서는 공통적으로 매달 하루는 오전 근무만 하고, 직원들이 함께 레고 놀이를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며 유대를 다지는 ‘패밀리 데이’를 개최한다. 더불어 일 년에 하루는 레고그룹 전체가 업무를 하지 않고 노는 ‘플레이 데이’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주 2회 재택근무를 하고, 부인이 아이를 출산하면 남자 직원도 두 달 동안 유급 휴가를 받는다. 아이 돌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아이와 함께 출근할 수도 있어, 덴마크 본사에는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놀이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 

인터뷰가 있던 날은 마침 ‘패밀리 데이’가 열리는 날이었다. 누군가 ‘희영 님’을 불렀다. 대표님이 아닌 호칭에 당황한 것도 잠시, 레고코리아에서는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인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패밀리 데이’를 맞아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놀이 활동에 참여한 직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환하고, 여기저기서 담소가 오갔다. 그 사이에서 ‘희영 님’은 전혀 이질감 없이 직원들과 어울렸다. 몸에 밴 겸손한 말투와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그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젊은 직원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글로벌 기업 ‘레고코리아’의 첫 한국인 수장으로, 정상에 오른 정희영 대표에게 새로운 꿈을 물었다. 그는 레고의 성장세를 이어가는 한편, 레고를 통해 ‘놀이의 중요성’과 ‘놀이를 통한 배움’이라는 가치를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놀이에 너무 인색해요. 레고가 탄생한 덴마크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척들까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합니다.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공부가 아닌 놀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이끌어 갈 미래 사회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놀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레고를 통해 놀이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습니다.” 

 

vol.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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