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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의학자의 눈으로 시간을 선물하는 창업가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06-26

의학자의 눈으로 시간을 선물하는 창업가

디지털 제약사, ‘웰트’ 강성지 대표(의학 04)



약물이 아닌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사람의 병을 치료한다는 ‘디지털 치료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산업 중 하나이다. 강성지 대표(의학 04)가 이끄는 ‘웰트’는 최근 국내 2호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해 식약처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강성지 대표는 우리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공중보건의를 거쳐 삼성전자에 입사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18년 포브스코리아 2030 파워 리더 5인에 선정되고 CES 2020에서 혁신상을 받는 등 디지털 치료제 산업의 선두에 서서 의료 환경의 혁신을 꿈꾸는 그를 만나 지금까지의 여정과 꿈에 관해 이야기했다.




‘똑똑한 또라이’, 연세에서 뛰놀다

강 대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른 걸 불편해하지 않는 아이’였다고 회고한다. 매년 놓치지 않고 반장을 맡을 만큼 교우 관계는 좋았지만, 모두가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스탠드에 앉아 선생님의 괜한 걱정을 사는 등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전국의 영재들을 뽑는다는 민족사관고, 그리고 이후 우리 대학교 재학 시절에도 그는 타인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민사고는 공부 잘하는 애들을 뽑지 않아요. 정확히 ‘똑똑한 또라이’들을 뽑아요. 그 또라이들을 모아 놓으니까 재밌죠. 서로에게 배우는 것들이 많았어요. 어떤 친구는 수학 올림피아드 나가고, 저는 물리 올림피아드 나가고. 그 외에도 저는 학교에서 별 보고, 사물놀이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그런데 어떤 분야든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야 살아남는구나.’”


과학 수업을 가장 좋아했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우리 대학교 수시전형에 지원했다. 과학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우리 대학교 면접은 그에게 아직도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리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물리 천재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겠더라고요. 대신 물리를 활용한 다른 재밌는 걸 찾다가 발명을 한 거죠. 의대 면접에서 문제가 ‘아는 과학 이론을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듯이 쉽게 설명해 보라’는 거였어요. 안 그래도 저는 과학을 좋아하니까 뉴턴의 3법칙을 선택했죠.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라고 했으니까 지긋한 교수님 세 분 앞에서 ‘지금부터 설명할게! 잘 들어. 첫 번째 관성의 법칙이야.’ 하고 메소드 연기를 펼쳤죠. 교수님들 눈이 처음에는 커지시다가 이내 웃으며 열심히 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합격도 시켜 주셨죠.”



우리 대학교에 진학한 강 대표는 넘치는 호기심으로 연세 캠퍼스를 누렸다. 발명반, 사진부, 신문사, 오케스트라 등 다채로운 동아리 활동과 타 학과 수업은 그에게 새로운 관점과 소중한 친구들을 선물해 줬다.


“의대는 예과 때 공부 안 시켜요.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2년 동안은 하고 싶은 거 하라고요. 그래서 저는 당구 치고, 스타크래프트 하고, 동아리도 7개 정도 했죠. 신문사 기자로 취재하러 가서 사진부에 낼 사진 찍고, 오케스트라 했던 이야기도 신문으로 쓰고요. 그때 당시 공부는 필요한 만큼만 정확하게 했어요. 옛날부터 저는 종이로 말려 있는 색연필을 사서 ‘7번 까면 공부 끝’이라고 정해 놨어요. 문제를 풀 때 맞으면 색연필을 많이 쓰고, 틀리면 덜 쓰잖아요. 많이 틀리면 공부를 더 하게 되고, 정량을 다 하면 그만하는 거죠. 100점은 운이어서 미쳐야 하는데 필요한 것만 딱 보면 80점은 맞을 수 있어요. 의사 면허도 80점이면 따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사람이 공부만 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 대학교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은 그의 안에 또렷하게 자리하고 있다. 


“발명반에서 공대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 친구들이랑 창업해 보자고 하면서 경영학도 공부하고 싶어졌죠. 경영대 강의를 다 듣기는 힘들어서 헌책방에서 가장 필기가 잘 된 책을 샀어요. 선배의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는 가장 더러운 책을 사서 경영학을 배웠죠. 다양한 경험을 하며 무엇보다 친구를 얻은 것 같아요. 가장 신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친구와 선후배를 얻은 게 가장 크죠. 그 친구들이 지금도 저를 배움으로 이끌고 제가 뭔가 하려고 할 때 함께하는 사람들이에요.”


강 대표는 의사 면허증을 따는 것보다 의학의 본질을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대 생활은 그에게 의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줬다. 


“보통은 의대를 들어올 때 의사로 진료하면서 돈도 벌고 이런 상상을 하면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출세를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다르게 의학의 관점에서 여러 공부를 많이 하려고 덤볐죠. 의학의 본질은 지식을 쌓고 외우는 것보다도 우리가 디자인하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인체를 공학적으로 뜯어보는 데 있어요.” 




시간을 선물하는 디지털 제약회사 웰트

의대생 시절을 마무리하며 강 대표는 의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이후 일반 병원이 아닌,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어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치료 기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웰트를 창업했다. 웰트는 최근 불면증을 위한 디지털 치료 기기 ‘WELT-I’를 개발, 식약처로부터 승인받았고 디지털 제약회사로서 성장하기를 꿈꾸고 있다. 강 대표는 왜 경영자로 나서서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힘쓰게 됐을까.


“우리가 지금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으로 환산할 수 있어요. 시간은 절대적인 화폐고, 모두가 똑같이 부여된 동전 24개를 깎아서 쓰는 거죠. 병원에 가면 그 동전 한두 푼 더 주기도 하고 올해 죽을 사람 내년까지 살려 주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시간을 무한대로 늘리는 거예요. 당연히 저도 시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어요. 다만 저는 저에게 부여된 삶을, 시간을 무한대로 늘리는 방법을 찾는 데 활용해 보고 싶어요. 그러면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더 쓸 수 있잖아요. 우주가 탄생하고 늙어 가는 것도 보고 싶고, 몇만 광년 떨어진 행성도 갈 수 있겠죠.”

 

시간이 가진 제약을 없애고 싶다는 강 대표의 꿈은 웰트를 통해 구현되는 중이다. 그가 웰트 구성원들과 함께 그리는 일단의 목표는 데이터를 통해 질병을 예측하는 의료 환경이다. 


“혼자서 만 년 걸릴 일을 만 명이 1년 만에 해내는 게 기업의 힘이거든요. 이런 조직의 힘에 공감하는 분들이 웰트에 많이 계신 것 같아요. 웰트의 청사진은 ‘1시간 뒤에 심근경색이 있을 거니까 응급실로 가세요’라는 메시지를 띄우는 미래예요. 현미경을 통해 세균을 발견하면서 감염학이 발전했던 것처럼, 인체에 관한 데이터를 볼 수 있는 도구로서 디지털을 써야 한다고 봐요. 저는 여전히 의학자고, 이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어요.”




순수한 Why를 찾아 달려온 길

의사에서 회사원, 회사원에서 창업가가 된 강 대표의 여정은 마치 여러 번의 모험처럼 보인다. 쉽지 않은 도전들 앞에서 자신을 추동한 원동력에 대해 그는 명확한 ‘왜(Why)’, 그리고 순수하게 노는 정신을 꼽았다. 


“스스로 ‘왜 태어났니?’부터 물어보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걸 미리 할수록 내 인생의 시간이 잘 정렬되겠죠. 50살에 깨달아서 그때 갑자기 잠재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그건 공부 안 했는데 마지막에 갑자기 아는 문제만 나올 확률과 같아요.”


분명한 동기를 찾기 위해 파고드는 이들에게, 강 대표는 앞선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삶의 힌트를 얻는 방법을 알려 줬다.


내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 딱 한 권의 책’을 골라 보는 게 답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일 거예요. 위인전 중 한 권을 골라서 그 사람이 성공한 시절 말고 내 나이 때 얼마나 번민하고 헤맸는지부터 보면 좋아요. 한 명만 볼 게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을 겁니다. 보다 보면 다른 책이지만 똑같이 나오는 포인트가 있어요. 그런 것들은 인생에서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되죠. 근데 책마다 다른 부분들이 있다면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예요. 그 다른 부분들은 얼마든지 내 인생에서 직접 채워 넣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다름’을 잘 채우면 인생에서 말도 안 되는 혁신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만의 ‘왜(Why)’를 찾아 정진하는 태도는 불안정한 경영자의 길 위에서 강 대표를 이끌어 가는 힘이자, 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의 핵심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중 좋은 타이밍을 만나 주목받았지만 묻힌 곳도 있고 잊혀진 곳도 봤어요. 노력 이외에 상황을 결정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진짜 순수하게 놀면 그 운에 취하는 것도 아니고 운이 없다고 좌절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찾고 이걸 왜 하는지 끝까지 한번 들어가 보면 좋겠어요.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가장 명확한 ‘왜(Why)’는 시간을 아끼고 노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꼭짓점이니까요. 다른 것들을 했어도 그걸 정렬점으로 삼아서 힘을 아낄 수 있어요. 그런 ‘왜(Why)’ 없이 살다 보면 그냥 이것저것 한 사람으로 남는 거죠. 이걸 대학교 때 찾으면 20대가 조금 더 풍성할 거고, 30대가 좀 더 정리될 거고 40대에는 아마 결실을 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가 꿈꾸는 꿈, 미래를 위해 오늘도 ‘왜(Why)’를 찾는 그의 발걸음은 더없이 진지하고 동시에 유쾌해 보였다. 그의 꿈과 함께 더 나아질 인류의 시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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