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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다큐를 통해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휴머니스트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06-20

다큐를 통해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휴머니스트

명품 다큐 <누들로드>, <휴먼 크로니클>을 연출한 이욱정 PD(영어영문학 84)



2008년 방영한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모으며 2009 대한민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BBC,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해외 방송국, 제작사 못지않은 뛰어난 퀄리티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작품이었고, 이후 KBS의 다큐멘터리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연출자 이욱정 PD는 방대한 스케일을 관통하는 섬세한 관찰력, 그리고 뛰어난 영상미와 드라마틱한 재미까지 모두 잡으며, 독창적인 ‘푸드멘터리’ 영역의 개척자가 됐다. 이후로도 <요리인류>, <푸드 크로니클> 등 흥미와 완성도가 모두 빼어난 명품 푸드멘터리들을 선보인 이욱정 PD는 지금 다큐 제작사 ‘마인드앳플레이’의 대표이자 2021년 출발한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 사회적 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일하며 음식으로 사람과 문화를 잇는 자신만의 푸드멘터리를 확장하고 있다. 


 


졸업 이후 살아가는 양분을 받은 연세 캠퍼스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나 연희동에서 자란 그에게 연세는 어릴 때부터 삶의 일부였다. 자유로운 교육을 받던 초등학교 때와 달리, 경직되고 답답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며 우리 대학교에 들어왔을 때, 그는 ‘이제 나는 진짜 내가 해 보고 싶은 걸 하겠다’는 기대가 무척 컸다. 우리 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연세만의 자유로운 분위기, 진보적이고 열린 학풍 때문이었다. 입학한 1984년의 캠퍼스 상황은 엄혹했지만, 그 혼란 가운데에서도 삶의 중요한 단초와 터닝 포인트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다. 농촌 활동을 하는 ‘로타랙트’ 동아리에서 농촌부장을 맡으며 여름과 겨울, 빠지지 않고 농활에 참여했다. 특히 농촌 활동에서 아이들과 함께 캠프를 하며 교육과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축적됐다. 당시 신촌은 대학생 문화 운동의 활동 거점이 모인 곳이었고, 그도 ‘신촌 우리마당’ 문화 운동에 참여하며 풍물과 연극, 단편 영화 등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열리는 동서문제연구소 세미나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해외 학자들이 오시는데 제 전공이랑 상관없는데도 무조건 갔어요.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이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도 그냥 앉아 있었죠(웃음). 정치학과 수업이나 사회학과 수업도 열심히 듣고, 또 본관 잔디에 누워서 하늘 보던 시간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대학에서 보내는 4년의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뭔가 달라질 수 있는 모멘텀인 듯합니다. 1980년대 대학은 더 여러 가지로 충돌하고 고민하는 시기였는데, 대학 4년 동안 경험했던 것들이 지금 제가 하는 일들의 에너지가 됐다고 생각해요.”


우리 대학교 시절을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문득 하나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걸어서 통학했는데, 제가 다니는 북문 쪽 경비실 근처에 개집이 있었어요. 제가 그 개를 늘 챙겨 줬거든요. 어머님이 싸 주신 도시락 음식을 덜어서 개에게 주면서 정말 친하게 지냈죠. 제가 멀리서부터 걸어오기만 해도 그 개가 엄청나게 반가워했어요. 학교 다니는 동안 아주 잘 지낸 친구였죠.”




음식으로 인간을 보는 ‘푸드멘터리’의 신호탄, <누들로드>

학생 때부터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때로는 학교의 시위 장면도 찍고, 문화 운동 동인들과 단편 영화도 찍었다. 지인들의 결혼식을 촬영해 선물하는 것이 취미였다. 결혼식과 돌잔치, 장례식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이 극대화되는 지점에서 학생이지만 그의 섬세한 시선과 카메라는 빛이 났다. 


“지인의 결혼식 영상을 찍었는데, 그 지인의 가족이 방송국 PD이셨어요. 제가 만든 결혼식 비디오를 보시더니 방송보다 재미있게 만들었다며 PD를 하라고 하셨죠.”


학부를 마치고 문화인류학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할 때는 조한혜정 교수님의 강의 영향이 컸다.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며 영상문화학자가 될 것인가, 방송국 PD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KBS의 합격 소식을 들었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PD를 원했지만, 막내 PD로 예능국과 시사 프로그램을 돌고 드라마 제작에도 투입됐다. 하지만 이때 쌓은 경험들은 그가 다큐멘터리 PD가 됐을 때, ‘흥미진진한’ 다큐를 연출하는 데 큰 자산이 됐다. 의료, 국방 등 다양한 분야의 다큐를 제작하며 능력을 인정받던 그는 KBS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공모에 <누들로드>의 기획안을 제출했다. 예전부터 음식을 테마로 하는 다큐 시리즈를 꼭 만들겠다고 생각해 오던 차였다. 


“그때는 ‘셰프’라는 용어도 생소하고,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라고는 <여섯 시 내 고향>이나 요리 프로그램 정도였어요. 그런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다큐 역시 충분히 가능하리라 봤습니다. 음식은 문화의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치 건축을 통해서 미술사를, 음악을 통해서 문화사를 이해하듯이 음식도 인간과 문명을 조망하는 좋은 렌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 음식은 비주얼이 뛰어나 ‘텔레비전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했어요. 요리를 텍스트나 사진으로 볼 때보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볼 때 훨씬 역동적인 연출이 가능하죠. 가장 텔레비전에 맞고 남녀노소가 좋아하면서 굉장히 심오한 얘기도 할 수 있는 소재가 음식이라고 믿었어요. 국수를 통해서 동서 문명 교류의 역사를 살피고 문화에 대해 통찰하는 시리즈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심사위원들이 이 기획에 동의해 주셨어요.”




영화만큼 멋있고 드라마만큼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압도적인 영상미는 ‘이욱정 다큐’의 시그니처와도 같다. 그는 텔레비전이라는 영상 매체는 아무리 훌륭한 정보와 메시지를 담더라도 영상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으면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셰프가 요리를 낼 때, 접시에 정성껏 장식하듯 담아내는 ‘플레이팅’에 비유될 수도 있다. 


“대학에서 가정학을 공부하신 어머니는 아들에게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줄 때도 편하게 주시는 법 없이 꼭 예쁜 유리잔을 골라서 따라 주셨어요. 그게 요즘 말로 ‘플레이팅’이죠. 그런 하나하나가 제게 영향을 줬을 거예요. TV라는 매체는 영상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정보와 메시지를 담아도 힘이 없어요. 논문이 아니라 TV 영상이기에 우선 흥미진진해야 합니다. 제 다큐에는 서재에 앉은 교수님 인터뷰가 잘 없어요. 그런 인터뷰는 책을 보지 왜 영상을 보겠어요.”


뛰어난 영상미, 광범위한 주제와 엄청난 취재량의 대하드라마급 다큐를 제작하지만, 이욱정 PD는 단출한 스태프를 운영한다. 해외 출장 시 전체 인원이 5명 내외에 불과해 공항에서 한국 제작진을 맞이하는 현지 코디네이터들이 항상 놀랄 정도다. 


“다른 나라에서는 20명 넘게 온다고 하더라고요. 꼴랑 4~5명이 오니 놀라죠. 그런데 우리가 촬영하는 것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독일 병정 같다고 해요. 모두 손발이 척척 맞고, 민첩하게 할 일을 다 하고, 또 많이 쉬지도 않는다고요. 제가 함께하는 스태프들은 소수 정예예요. 하지만 마음이 통하니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제가 생각하는 컷을 찍고 있어요. 운 좋게 좋은 동료들을 만났어요. 저는 촬영하는 양이 실은 굉장히 많거든요. 젊은 PD 시절에도 촬영 감독 선배들이 ‘이욱정 PD랑 나가면 엄청 많이 찍어서 피곤한데 대신 나중에 결과는 좋다’고 했어요. 한 시간 찍을 걸 두세 시간 찍는 스타일이죠. 굉장히 많은 옵션을 찍고 거기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기 때문에 대규모 스태프로 하면 제작비가 엄청날걸요.”



르 꼬르동 블루 요리 학교로 새로운 모험

<누들로드>가 해외에서까지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는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대로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며 관리자로 승진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음식을 정말 잘 아는 전문 분야로 만들 것인가 고민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요리 학교에서 진짜 장인의 세계를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PD 7년 차에 휴직하고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방송학을 공부한 적이 있는 그는 다시 한번 파격적인 선택을 했고,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모험이라고 말렸지만 저는 경제적, 사회적 기회비용, 각종 리스크보다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것만을 생각했죠. 물론 요리 학교에서 고생도 엄청 많이 했어요. KBS에 돌아와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고, 최고의 동료들이 도와주고, 월급까지 주는 이곳이 천국이구나 했죠(웃음).”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공부한 것을 정말 잘 써먹는다’는 말을 했다. 영어영문학(학부), 문화인류학(대학원). 방송학(미국 노스웨스턴)에 요리(르 꼬르동 블루)까지. 깊이와 방대함을 고루 갖춘 그의 공부 여정은 다큐멘터리라는 세계 안에서 화학 작용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에게 지적, 심미적, 그리고 흥미롭기까지 한 즐거움을 주게 됐다.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 사회적 협동조합’의 ESG 활동

그는 남산 자락에 위치한 검벽돌집에서 제작사 ‘마인드앳플레이’와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 사회적 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다. 그의 ‘요리’는 어떻게 ‘도시의 재생’과 만나게 됐을까.


“이탈리아 볼로냐에 취재를 갔는데 그곳은 구도심의 건물들, 과거의 도살장이나 창고, 공장을 철거하지 않고 고스란히 남긴 상태에서 내용만 문화 센터, 도서관 등으로 바꾸고 있었어요. 우리가 익숙한 도시 재생의 개념은 다 밀어 버리고 새로 세우는 것인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도시 재생은 동네나 거리가 수명을 다해서 사람들이 오지 않게 됐을 때, 그곳에 다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건물을 짓는 것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인적이 끊긴 도시의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관공서나 기업이 아니라 오히려 식당이나 카페예요. 경리단길이나 성수동을 봐도 그렇죠.”


“여기 남산 주변의 식당들이 거의 관광객 대상이기 때문에 코로나 때 타격이 무척 컸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 식당 사장님들과 의기투합해서 도시락으로 만들어 팔았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함께 만든 도시락을 명동 노숙인들에게 제공하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도시락 하나가, 음식이 도시에 만들 수 있는 변화를 봤어요.” 


지금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 사회적 협동조합’은 여러 기업, 단체와 손을 잡고 새로운 사회 변화를 활발히 도모하고 있다. 


“음식은 인간을 이해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지도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도 유용한 존재예요. 음식은 자연과 인간을 잇는 매개이고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줍니다. 생산과 소비라고 하는 경제적인 연결도 있지만,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만 해도 짧은 시간에 상당한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죠.”



‘병원’이라는 창으로 세상을 보다, 신작 <휴먼 크로니클>

그의 최신작은 세브란스병원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휴먼 크로니클>이다. 그에게 병원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사회를 비추는 또 하나의 좋은 ‘창(window)’이다. 


“세브란스병원 의사들을 보면 스무 살에 의과대학에 들어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똑같은 그 자리에서 일합니다. 어찌 보면 봉쇄수도원 성직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너무 힘들어서 다들 기피하는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의 의사들, 간호사들을 보면 이분들이야말로 정말 봉쇄수도원에 들어와서 큰 가치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듯해요. 의료인에 대해서 여러 시각들이 있지만 현장에 가면 오직 생명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의료인들이 훨씬 많습니다.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버는 것이 최고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막중한 리스크를 가지고 사람을 치유한다는 것, 그것도 굉장히 중한 질환들을 치료한다는 것은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숭고한 헌신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휴먼 크로니클>을 통해서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인류학적으로 조망하고 싶었습니다. 병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단순히 잘나가는 직업을 떠나 병원에 대해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병원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이요. 세브란스에서 제가 만난 사선에 선 의료인들은 그 주제를 삶으로 투명하게 보여 주셨어요.”




연세인들이 미디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

다큐멘터리스트, 혹은 방송계 입문을 꿈꾸는 연세의 후배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방송계를 보면 연세인 동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꽤 많잖아요. 저는 그게 우연이 아니라고 봐요. 창의성이란 남다른 시각을 추구하고 나만의 고유한 영역을 보존하는 사람들, 그런 문화 속에서 숨 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연세가 가지고 있는 연세만의 공기, 문화가 분명히 작용했을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는 K-콘텐츠 시대에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저에서 스토리의 원천과도 같은 분야입니다. 그래서 이 분야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좋은 인재들을 필요로 합니다. 자유로운 학풍, 창의적인 공간에서 공부하는 연세대학교의 많은 후배들이 도전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와 함께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한 가치’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전에는 기능적인 부분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중요시 여기잖아요. 획일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감성을 담은 아름다움이요. 행복은 무엇일까 생각할 때 저는 아름다운 경험, 다양한 가치를 떠올려요. 한국 사회는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극단적인 실용주의를 취했고 몇 십만 가구가 똑같은 구조의 집에서 살죠. 굉장히 동질적인 사람들이 좁은 반도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남이 어떻게 사느냐,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굉장히 민감해요. 모두 획일적인 가치를 추구하니 1 등부터 100등까지 등수가 매겨지죠. 지금 추구하는 가치가 50 개, 100개로 다양해진다면 1등이라는 등수가 무의미해지겠죠. 다양한 가치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얼마 전 교정의 윤동주기념관에 방문해서 큰 감동을 받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교 윤동주기념관에 갔는데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윤동주는 정말 조심스러워요. 항상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을 성찰하죠. 그 조심스러움과 끊임없는 성찰, 사람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어요. 윤동주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연세인입니다.”


그리고 그는 윤동주기념관에서 구입했다는 커다란 그림책을 보여 주며 환하게 웃었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vol.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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