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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웨딩드레스로 삶의 가장 특별한 날을 빛내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7-22

웨딩드레스로 삶의 가장 특별한 날을 빛내다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으로 최고의 시간을 완성하는 최재훈 엔조최재훈 대표(의류환경학 93) 



최고의 순간을 완성하는 드레스 

결혼식을 앞둔 신부는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골라 입어 보는 감동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시상식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은 가장 멋진 드레스를 찾기 위해 수많은 드레스를 입어 보고 심사숙고한다. 결혼식 날 버진 로드에서, 시상식장의 레드 카펫에서 가장 멋진 시간이 펼쳐진다. 최재훈 동문은 이처럼 삶의 가장 특별한 날을 더욱 빛나게 하는 드레스를 디자인한다. 그저 외적인 아름다움을 더할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최고의 순간을 완성한다. 



생각의 차별화로 독창성을 찾은 대학시절  

“중고등학교 때 집안에서 의류 매장을 하셨고, 누님 네 분 중 두 분도 의류 관련 일을 하셨어요. 부모님이 서울의 남대문에 옷을 떼러 오시면 같이 오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관심도 많았고 옷 입는 것도 즐겼고요. 사실 지방에선 의류환경학과, 의상디자인학과 등에 진학한다고 하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워낙 보수적이기도 하고. 저는 전혀 그런 것 없이 진로를 선택했어요. 또 어린 시절부터 뭔가를 만드는 손재주도 있었던 것 같고. 관심사와 재미를 좇다 보니 자연스레 의류환경학과에 진학했죠.”


연세를 선택했던 것은 커리큘럼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타 대학 의상디자인과 등에서는 대부분 실기의 비중이 높았지만 우리 대학교는 의상 심리에서 마케팅, 디자인, 섬유 등 균형 있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배웠던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기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부족함도 느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기 과목에서 힘든 점도 많았다.


“처음에는 실기 과목들 학점이 좋지 않았어요. 제대로 졸업할 수 있을까 생각한 때도 있었죠. (웃음) 하지만 색채 및 구성이라는 과목에서 자신감을 찾게 됐어요. 크로키나 일러스트처럼 드로잉 실력이 중요하기보다는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동원해 평면이나 오브제 구성을 해 보는 수업이었죠.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저는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폐품 중 색감이 예쁜 소재를 활용해서 구성했어요. 좀 새로운 시도였죠. 후에 교수님께서 두세 작품을 선정해 칭찬을 해주셨는데 저도 깜짝 놀랐어요. 기뻤고 학점도 A를 받았죠. 그때부터 ‘내가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어요.”

 

이전엔 실기 과목이 부담스러웠지만, 틀에 가두는 미술 교육보다는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를 접목했던 그의 노력이 창의성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창작 디자인 수업에서 특히 그랬다. 좋아하는 디자이너를 한 명 선정해 그의 작품 세계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디자인을 구상하고 실제 옷까지 만들어 보는 과정을 경험하는 교과였다. 사실 옷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오리가미라고 하는 일본의 종이접기 방식을 의상에 적용하고 색채감도 남다른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당시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죠. 대중적인 옷은 아니지만 독창적이었어요. 그 디자인을 연구했어요. 색종이를 접어 보면서 일반적인 옷의 패턴이 아닌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풀어갔어요. 교수님께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콘테스트에 출품해 보라고 권유도 받았어요.”


스킬보다는 ‘생각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성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으로 남들과 차별화하는 것. 실용 디자인으로 여겨지는 의류 디자인에 나름의 해석과 크리에이티브를 더해 ‘작품’의 단계로 만들었던 셈이다. 그런 관심은 3학년 때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동양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젠(ZEN)’ 트렌드는 당시 전 세계 패션계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에게 전통의 현대화라는 새로운 영감을 줬다. 일본에서 배움의 기회를 갖고 벤치마킹을 통해 자신도 무엇인가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백화점 MD에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새 시작  

하지만 졸업 후 그는 디자인의 길이 아닌 대기업 백화점 입사를 선택했다. 의외의 결정인 듯싶지만 당시 IMF 사태와 맞물려 내린 현실적인 결정이었다. 단 한 명도 디자이너를 뽑지 않았던 시절, 취업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인턴으로 시작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백화점 MD(Merchandiser)로 입사, 명품 매장과 브랜드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어려운 시대적 환경 때문에 하고 싶었던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백화점 MD 경험을 통해 그는 시장을 보는 눈을 갖추게 됐다고 말한다.


“훌륭한 브랜드를 계속 접하고 브랜드 관계자나 판매하시는 분들과 소통하면서 시즌별 시장 동향이나 잘 팔리는 상품의 특징, 마케팅 방법 등 브랜드 운영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였죠. 제 브랜드를 론칭할 때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때는 온라인 쇼핑몰 같은 플랫폼도 없었기 때문에 브랜드 론칭에는 많은 자본이 필요했고 웨딩드레스라는 아이템이 수작업 기반의 소량 생산이기 때문에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긴 하지만, 브랜드를 론칭하는 과정은 대량 생산이 필요한 기성복 론칭과 그 과정이 다르지 않거든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매출 분석과 같은 숫자에 관한 이해도 가질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시스템이 꽉 짜인 기업에서의 생활이 어느 날부터 답답했고 즐겁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자문하는 시간을 가지며 더 늦기 전에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커졌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디자이너로서 도전을 결심했다. 늦었지만 더없이 설레는 시작이었다. 아직 젊으니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가 없겠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일반적이지 않은 ‘웨딩드레스’를 아이템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옷을 디자인해야 할까 여러 고민도 많았죠. 그러다 웨딩드레스가 눈에 들어왔어요. 친구들이 결혼을 많이 하는 시기여서 결혼식에서 자주 접하게 됐는데 너무 전형적인 공주 스타일이 대부분이었어요. 전혀 디자인을 개발하지 않은 느낌이었죠. 백화점에서 봤던 명품 브랜드들의 다양하고 세련된 디자인들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났어요. 또 드레스는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역량과 자기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오뜨 쿠튀르(haute couture)’의 극치예요. 어떤 제한이 없잖아요.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 가는 작품인 거예요. 게다가 시장 조사를 해보니, 기존 디자인의 수준이나 다양성에 있어서 한계도 보였고요. 열심히 나만의 디자인을 개발하면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웨딩드레스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어요.” 




시장을 변화시킨 오픈 웨딩드레스숍

최재훈 동문은 웨딩드레스 브랜드를 론칭한 후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마케팅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예전에는 웨딩드레스숍에서 드레스를 볼 수가 없었다. 고객이 방문하면 상담을 통해 한 벌씩 추천하는 방식으로 판매됐던 것. 고객의 선택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한 관행이었다. 가격도 상담 상황에 따라 달리 책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너무 불합리한 방식이었어요. 대중적인 상품이 아니다 보니 너무 정보도 없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도 거의 없었죠. 잡지에 공개된 한두 벌이 그 숍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부였어요. 당시 신부는 어머니와 함께 숍에 들러 드레스를 고르는 일이 예사라 어머니들 간의 입소문으로 움직이는 시장이었죠. 그런 시장의 폐쇄성을 바꾸고 싶었어요.”


웨딩드레스 시장을 겪으며 한계를 느꼈던 그는 어느 정도 사업 규모가 커지자 본격적으로 변화를 주도했다. 보기 쉽게 다양한 드레스를 공개된 장소에 진열하고 신부들이 직접 드레스를 눈으로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입을 수 있게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드레스 디자인과 퀄리티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반대도 많았어요. 웨딩드레스는 대여를 하는 아이템이에요. 어떤 신부가 와서 드레스를 마음에 들어 해서 예약해 놓았는데, 같은 날 결혼식을 하는 또 다른 신부가 그 드레스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한 벌 더 만들어야 해요. 인기 아이템은 더 많이 만들어야 하겠죠. 드레스를 감춰 두고 중복되지 않게 보여주면 숍 입장에서는 더 효율적인 판매 방식일 수 있지만 저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재훈 동문은 ‘오픈 드레스숍’을 표방하며 고객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판매 방식뿐 아니라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간 대세였던 화려한 공주풍의 드레스보다는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슬림한 드레스로 차별화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드레스는 업계의 화제를 모았고 각종 화보 등으로 선보이며 감각적인 패션리더들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이목을 끄는 유명인들의 결혼식에 단골로 등장하는 드레스로, ‘심플하고 세련된 드레스는 최재훈이다.’라는 공식이 됐다. 그의 혁신은 다른 드레스숍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인지도가 부족했던 초창기에는 타 숍들과 달리 웨딩컨설팅을 적극 이용하는 전략으로 고객 수를 늘렸다. 현재는 자체 디자인실을 갖추고, 전국 17개의 현지 매장에 드레스를 독점 공급하며, 중국 시장 진출까지 할 만큼 사업 규모와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 



칸 영화제를 빛낸 드레스의 디자이너 

사업의 규모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도 이어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디자인을 공개하는 프로젝트로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크리에이티브를 녹여내며 자극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웨딩 문화의 변화가 드레스 트렌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는 웨딩드레스에 대한 문화를 면밀하게 탐색하고 반영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스몰 웨딩 트렌드도 있지만 동시에 예식장의 결혼식은 보다 화려해졌어요.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꽃 장식도 어마어마하죠. 그런 문화에 맞춰 웨딩드레스도 점점 고급화되고 화려한 것들이 트렌드예요. 이것을 반영해 제 방식으로 해석한 시그니처 드레스는 실루엣은 절제됐지만 고급스러운 비즈 장식이 화려함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이에요.”


이와 함께 그는 드레스라는 아이템을 웨딩드레스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다. 얼마 전 최재훈 동문의 드레스는 ‘아이유 드레스’로 화제가 됐다. 칸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아이유(이지은)의 레드 카펫 드레스는 신비로운 그린 그레이 컬러에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주목을 끌었는데,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공수해 온 수많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드레스들 사이에서도 아이유가 선택하기에 충분했던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디자인. 국내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드레스가 칸 영화제 드레스로 선택받았다는 점에 내심 놀랍기도 했다.


“일부러 홍보하고 협찬한 것은 아니었어요. 사실 예상 못 했어요. 저희 SNS에 계속 작품을 공개하는데 그 컬러 드레스를 보고 협찬 요청을 해서 흔쾌히 응했어요. 보통 연예인들은 여러 브랜드의 옷을 협찬받아 수십 벌 이상의 후보 중에서 고르거든요. 그래서 실제 레드 카펫에서 입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어요. 또 아이유 씨는 한 명품 브랜드의 앰버서더이기도 하죠. 나중에 유튜브에서 드레스를 고르는 과정을 봤는데 사실 저희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렸어요. (웃음)”


그의 드레스가 칸 레드 카펫 드레스로 선보였다는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 그에게 특별했다. 2018년 중국의 사업 파트너가 칸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아 함께 참석했던 최재훈 동문은 그 자신도 레드 카펫을 걷기도 했다. 그곳에서 언젠가 내 드레스가 이곳의 레드 카펫 드레스로 오르기를 꿈꿨다.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됐다.


“뿌듯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웨딩드레스 외에 컬러 드레스 작업도 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컬러 드레스는 여러 상황에 쓰일 수 있어 더 다양하게 만들어 보자 해서 시작했거든요. 협찬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고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서 브랜딩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결혼식에서 입는 화이트 드레스보다 자유롭게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어서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무척 재미있기도 합니다.”



대를 이어 사랑받는 브랜드로 

최재훈 동문은 자신의 브랜드 지향점을 이렇게 규정한다. 


“이 시대 여성들이 사랑하는 드레스이자 그녀들의 딸이 선택하는 드레스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촌스러운 드레스가 아니라 트렌디한 드레스로 인정받고 고객들이 선택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브랜드가 되도록 브랜드의 가치도 지켜내야 하겠죠.”


생의 가장 좋은 날, 신부의 로망을 충족시키고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드레스의 역할은 크다. 결혼식이 끝난 후 드레스에 대해 후회가 있다면 결국 그 결혼식은 행복한 기억보다는 후회가 남을 것이다. 그래서 최재훈 동문에게 가장 기쁜 순간은 ‘내 결혼식에서 최고의 선택은 엔조최재훈 드레스다.’라는 말을 들을 때다. 그는 앞으로 사업적으로 규모를 더 늘리기보다는 기존 사업들에 새로움을 더해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브랜딩에 주력하고 싶다. 국내 많은 유명 인사들은 여전히 중요한 이벤트에서 수입 브랜드의 드레스를 입는다. ‘나는 어떤 브랜드를 입는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재훈 동문은 자신이 만든 드레스의 브랜드 가치가 해외 명품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고리타분함’과의 결별, 나만의 길을 찾는 방법

최재훈 동문은 ‘고리타분함’을 가장 경계한다. 때문에 늦은 나이에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선택한 그의 도전도 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는 청년들에게도 ‘정답은 없다’는 조언을 전하고 싶다.


“제가 백화점에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요? 아직 그곳에는 제 입사 동기들이 있잖아요. 가끔 만나면 그들은 이미 부장급 이상이고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저는 부럽지 않더라고요. 제가 그곳에 안주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행복했을까요? 아닐 거예요. 어쩌면 미래에 대한 답을 못 찾을 때, 그냥 행복한 길에 도전해 보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길이 될 거예요.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겠죠.”



무언가에 도전하고 변화시키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시장에 혁신을, 디자인에 남다름을, 브랜딩에 새로운 기회를 찾아 달려온 최재훈 동문. 매 순간 그의 과감한 선택이 있었기에 오늘이 가능했다. 때문에 한국 웨딩드레스의 자존심 같은 브랜드로 평가받는 ‘엔조최재훈’ 브랜드가 미래에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고 더욱 건재할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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