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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트로트 열풍의 숨은 주역, 조영수 동문을 만나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0-02-03

트로트 열풍의 숨은 주역, 조영수 동문을 만나다

가요계 대표 스타작곡가에서 ‘사랑의 재개발’까지

 


SG워너비, 씨야, 다비치, 홍진영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가수의 명곡에는 어김없이 히트곡 보증수표가 함께했다. 감성 충만한 발라드도, 신명나는 트로트도 장르 불문 “썼다 하면 히트곡”으로 탄생시키는 스타작곡가 조영수 동문(생명공학과 95)이다.


조영수 동문은 이승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SG워너비 ‘내사람’, 홍진영 ‘사랑의 배터리’, 유재석(유산슬) ’사랑의 재개발’ 등 대중가요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전 세대의 사랑을 두루 받고 있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작곡가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만 650곡 이상,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연속 저작권료 수입 1위, 2016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선정 대중음악 작곡과 편곡 부문 저작권료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음악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차세대 트로트 스타를 탄생시킬 신개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트로트의 열풍을 이끄는 한편, MBC 예능 ‘놀면 뭐하니-뽕포유’에서 트로트 신인가수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을 작곡하면서 우리 대학교 생명공학과 출신의 작곡가라는 이력이 크게 주목받았다.


조영수 동문은 “우리 대학교 출신이라는 점에 스스로 큰 자부심을 느낀다. 신인 작곡가 시절 가장 중요한 자리에서 나를 소개할 때 모교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며 “특히 가요계에서도 박진영, 김동률 같은 연세의 선배들이 있어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했다.”고 학교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드러냈다.





음악 인생의 전환점, 대학가요제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본업으로 삼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공대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생명공학도가 된 조영수 동문은 1996년 대학가요제를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열두 번째 테마’라는 그룹으로 출전해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직접 작곡한 대상곡 ‘새로나기’로 일궈낸 값진 결실이었다. 이 일화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은 조영수 동문은 본격적으로 음악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고백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는데 본선에도 오르지 못한 채 ‘예선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어요. 하지만 결과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자고 마음먹었죠. 만반의 준비를 한 끝에 이듬해 출전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어요.”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소식에 어머니가 선물해 준 신시사이저*는 그에게 새로운 음악적 발판을 마련해줬다.


“처음으로 대중음악을 편곡할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줬던 것도 수십 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신시사이저 덕분이었죠. 대학가요제가 음악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면 신시사이저는 작곡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어요.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 작곡한 곡 대부분이 신시사이저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만 프로 작곡가로서의 데뷔의 길은 험난했다. 직접 작곡한 자작곡이 담긴 데모 CD를 들고 무작정 유명 작곡가들의 기획사를 찾아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여러 날 발품을 판 끝에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김형석, 박근태 작곡가와 연이 닿게 됐다고. 조영수 동문은 당시 상황을 그저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당시 신인 작곡가가 대형 가수의 앨범에 참여하고 타이틀곡을 쓴다는 건 지금으로선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어요. 선배 작곡가분들이 잘 이끌어 주신 덕에 작곡가로서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죠. 2003년 가수 옥주현의 앨범에 곡이 실리게 됐고, 2004년 신화의 〈브랜드 뉴〉 앨범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 곡이 그해 가요대상을 차지했어요.”


*신시사이저전자 악기의 하나발진 회로에서 얻은 단음을 전자 회로에서 가공하여 여러 가지 음색을 만들어 내는데대부분이 건반 악기 모양이다.



작곡에는 공식이 없다… 20년 롱런의 비결 

이후 작곡가로서 승승장구하게 된 조 동문은 밤낮없이 작곡에 몰두하게 됐다고 했다. 3평 남짓 비좁은 작업실에서 9년간 400곡을 만들어냈다. 일주일에 1곡 꼴로 곡을 뽑아낸 셈이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멜로디를 만들고 가수의 목소리를 체크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하듯 대중의 사랑을 받는 히트곡이 그의 손에서 속속들이 탄생했다.


“다작의 원천은 작곡가로서의 욕심이었죠. 제가 작곡한 곡들이 히트곡이 되고, 기록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가요 차트 1위에서부터 5위까지 제 곡으로 채워진 적도 있었어요.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가요 차트에 한 곡이라도 더 추가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작곡의 전성시대, 하루에도 수많은 자작곡들이 탄생하고 있다. 프로 작곡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자작곡을 발표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가요계에서는 혜성처럼 반짝 나타나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는 작곡가들이 많아졌다. 작곡가 인생 20여 년, 조영수 동문은 “작곡가라면 다양한 장르의 곡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롱런의 비결을 밝혔다.


“작곡가라면 으레 음악적인 감각을 잘 갖춰야 하지만 이 못지않게 빠른 적응력을 겸비하는 것이 중요해요. 변화무쌍한 음반 시장을 분석하고, 대중의 요구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하죠. 또, 어떤 곡이든 듣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곡의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기에 작곡을 할 때 대중이 좋아할 만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 세계

“현재로서는 가보지 않은 음악의 길이 많아서 음악 인생에서 은퇴란 없을 것 같아요. 그동안 한국 가요라는 작은 우물에 있었는데 뮤지컬·영화 음악에도 도전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신인 작곡가 때 가졌던 초심으로 돌아가 대중들에게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는 후세에 남길만한 명곡들을 탄생시키고 싶어요.”


과거 정통 발라드를 잘 만드는 작곡가로 대표됐던 조영수 동문은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더 다양한 장르로 뻗어 나갔다. 2009년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를 작곡하며 트로트에 도전한 이후 댄스, 응원가, 캠페인송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2018 평창동계올림픽 시상식 음악 감독을 맡아 당시 시상식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티어스 오브 글로리(Tears of Glory)’를 작곡했던 경험은 작곡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올림픽 시상식이 메달리스트에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 감격의 순간에 이 음악으로 선수들이 그 동안의 힘듦을 위로 받았으면 했어요. 동시에 시청하는 국민들에게는 오래도록 이 장면이 가슴속에 뭉클하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 시상식에서 배경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과 선수 가족들의 모습에 울컥했어요. 아직도 그 순간이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어요.”


조 동문은 현재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의 심사위원으로 맹활약 중이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미스트롯〉에 이어 또다시 심사위원으로 발탁됐다. 특유의 솔직담백한 입담과 냉철하면서도 예리한 심사평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고 있는 조 동문은 “프로그램이 잘 될 줄 몰랐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프로그램의 화제성보다는 대한민국 트로트 열풍에 화력을 더할 예비 트로트 가수의 음악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이 갔어요. 미스터트롯 최종 우승자에게 신곡을 선물해주게 되는데 우승자의 장점과 성향을 잘 반영한 곡을 쓰고 싶어요.”



“진심은 통해요”…‘제2의 조영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다작(多作) 작곡가로 유명세를 떨쳤던 조영수 동문에게도 5년 전쯤 개인적으로 힘든 고비가 찾아왔다고 했다. 조 동문은 “부모님이 편찮으시고 나 역시 건강이 안 좋았다.”며 음악을 포기할까 생각했던 순간 선택과 집중에 주력한 것이 슬럼프 극복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다작(多作)을 했어요. 체력도 뒷받침이 되어줬고, 곡을 쓴다는 것 자체가 정말 즐거웠어요. 때문에 웬만한 힘든 상황은 참고 견디며 곡을 썼죠. 이제는 슬럼프가 왔을 때 휴식을 취해요. 꾸역꾸역 붙잡고 하기보다는 버릴 때는 버려야 하는 걸 알았어요.”




조영수 동문은 작곡 활동에 매진하는 한편 프로듀서로서 입지도 굳건히 다져가고 있다.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했던 후배 가수 케이시 ‘그때가 좋았어’가 역주행 신화를 쓰기도 했다고. 조영수 동문은 “2년 전만 해도 ‘케이시를 아세요?’라고 물었을 때 열에 아홉은 모르는 가수였다.”라며 연세의 후배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자기 PR시대라고 할 만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홍보수단이 정말 많아요. 훌륭한 음악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국내 스타를 넘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죠. 음악에 인생에 걸자고 마음먹었다면 끊임없이 도전해보세요. 자기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를 배우고, 화성학이나 음악 이론 등 좀더 클래식한 음악 공부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죠. 이때 ‘음악은 감각과 지식이 반반이다’라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vol.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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