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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인문학 산책] 철학의 길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4-06-25

철학의 길

철학과 이승종 교수

 



저로 하여금 세상을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Thomas Mann),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 등이 집필한 성장소설이었습니다. 철학과의 만남도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월경의 시작 등 몸의 변화를 통해서 자신이 달라져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지만, 제게 변화는 몸에 국한된 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춘기에 읽은 책들이 뒤흔들어 놓은 변화의 계기는 그 어떠한 것보다 절실하고 생생했습니다.

 

책은 저에게 별천지로 들어가는 스타게이트(차원을 이동하는 문)였고, 저는 책 속에서 위대한 작가 및 사상가들의 영혼과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저 사이에 놓인 시간과 공간의 엄청난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그들이 펼쳐 보이는 이야기와 가르침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의 저자들은 제가 발 딛고 선 시간과 공간이 전부가 아닐뿐더러, 실제의 시공간이 얼마나 광활하게 뻗어있고 그 의미의 심층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책을 통한 저자와의 만남을 사랑하는 친구나 연인과의 만남 이상으로 높게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만남을 저는 2인칭적 만남이라 부르겠습니다. 2인칭인 너 혹은 당신은 3인칭인 그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도, 1인칭인 나 혹은 우리처럼 자신과 밀착되어 있지도 않으면서, 제가 책을 펼칠 때나 읽은 내용을 생각할 때면 바로 저를 엄습해 온몸과 마음을 완전히 마비시켰습니다.

 

책과의 2인칭적 만남은 저로 하여금 삶을 원점에서부터 새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살아있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습니다. 깨어 있을 때는 물론 잠을 자면서도 이런 화두를 붙잡고 있다 보니 온갖 꿈을 꾸게 되었고, 꿈에서 깨어난 후에는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을 들여다보았고, 저를 대상으로 그 책의 내용을 실제로 검증해보기 위해 더 많은 꿈을 꾸고는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 고등학생이던 저는 어느 겨울방학을 바보처럼 꿈만 꾸다가 다 지나 보내기도 했습니다. 

 

책과의 2인칭적 만남에서 야기된 저의 실험과 방황은 신열이나 신내림과 같은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저는 곤충의 탈바꿈에 가까운 변화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꿈속에서는 날갯짓으로 하늘을 날곤 했습니다. 고공비행은 아니었지만 살던 동네를 내려다볼 정도 높이의 비행은 큰 어려움 없이 언제라도 가능했습니다. 깨어있을 때에도 자신만의 생각에 곧잘 빠져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저를 보았다면, 넋이 나간 듯한 몽상가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저의 생각과 체험을 말이나 글(편지)로 털어놓기도 했지만, 친구와의 대화보다는 책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헤매려고 했습니다. 친구보다 책이 더 가까이에 있었고 책에서 만나는 세상이 제게는 더 무궁무진했습니다. 

 

저는 책이 밝혀주는 미지의 길로 곧장 들어섰고 그 길을 가는 것을 제 인생의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중 가장 깊고 가장 먼 길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했습니다. 학문의 진리를 탐구하는 규칙들을 알려준 데카르트도 유익했지만,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싯다르타가 제가 닮고 싶은 구도자의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철학의 길로 나설 능력이나 자격이 있는지, 그 길이 어디로 인도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철학에 이끌렸습니다. 다른 여러 길을 저울질해서 그중 가장 매력 있는 길을 선택한 게 아니라, 철학의 길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소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고 3이 되어서야 그동안 미친 사람처럼 들떠 있던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매진해 다행히 뜻한 바대로 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서 마주한 학문의 세계는 눈부시게 광활했습니다. 인문학 중에서는 철학과 문학, 사회과학 중에서는 사회학과 경제학, 자연과학 중에서는 물리학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주마간산 식으로나마 관심이 가는 학문들을 섭렵해 나갔습니다. 배움의 기쁨은 컸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무지를 채워가는 배움만으로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바라던 구도자의 길인지 회의가 들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선 길에 구도자는 보이지 않고 학자들만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고등학생 시절에 비해 대학 4년은 학문의 기초를 닦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책은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제게 보내오고 있었습니다. 책은 대학보다 위대했고 책의 저자들은 주위의 학자들보다 격조가 높았습니다. 대학원 진학 후부터는 한 사람의 저자와 그가 쓴 한 권의 책에 연구를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이었고 그가 쓴 <철학적 탐구>가 제 인생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그의 삶이 제가 찾던 구도자의 모습과 닮아서였습니다. 이렇게 연구 주제를 확정해놓고 2년간 석사논문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철학에 대한 학술적인 글을 짓는다는 것의 즐거움과 보람을 흠뻑 느끼게 되었습니다.   

  

석사논문을 마치고 글을 통해서만 알고 흠모해 오던 법정스님을 찾아갔습니다. 학자의 길에 막 들어선 터였지만 구도자의 길에 대한 갈망 또한 컸기 때문입니다. 이 두 길이 서로 포개질 수는 없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법정스님은 양자택일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절에서 생활해 볼 것을 권하셨습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천안의 성불사에 있어 보았지만, 군 입대로 말미암아 절에서의 생활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후로 수십 년이 경과한 다음에 저는 수행을 익히려 찾아간 미얀마에서 쉐우민(Shewoomin) 수행센터의 떼자니야(Tejaniya) 사야도에게 학자의 길과 구도자의 길에 대해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분은 법정스님과는 다른 답변을 주셨습니다. 수행자의 자세는 학자가 추구하는 학문의 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학문을 수행처럼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학문도 더 깊고 더 넓어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분의 말씀에서 격려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학문에 대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영감이 떠올랐고, 과거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가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철학 공부를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에 대해 글을 짓고 가르칠 기회가 오게 됩니다. 가르치려면 가르칠 내용을 먼저 자기화해야 합니다. 이 자기화는 짓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짓기는 자기화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박사논문을 쓰러 유학한 미국의 대학에서는 자격을 갖춘 대학원생들에게 학부과목의 강의를 맡겼는데, 저도 제가 개설한 철학 강의를 통해 서투르게나마 미국의 대학생들과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및 인근의 칼리지 외에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도소 내의 대학 프로그램에서도 철학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교도소의 수강생들은 철학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그 의미를 저울질하고 저마다 자신의 삶에 새겨보려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저와의 만남이 갇힌 공간에서 외부의 자유인과 삶과 학문을 배우고 논할 수 있는 유일하고 귀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캠퍼스의 대학생들에게서는 저의 대학시절이, 교도소의 수강생들에게서는 저의 고교시절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뜻한 길을 간다는 것은 ‘있던 길을 잇고 없던 길을 낸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철학에 뜻을 세우고 그것을 공부하고 그로부터 성과를 내고,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바를 학생들과 공유해 왔습니다. 저마다의 인생에서 세우는 뜻이 꼭 철학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무엇이든 의미 있는 것에 뜻을 세우고 이를 향해 매진하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대한 목표 없이, 자신에게 당면하는 삶을 즐기며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삶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인류에 공헌하는 바는 미미할 것 같습니다. 

 

제가 평생에 걸쳐 철학을 공부하여 얻은 성과인 열 권의 책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각 책에는 철학에서 배운 바와 이를 토대로 제가 지어본 생각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저는 철학 배우기와 짓기는 철학에 뜻을 세운 사람뿐 아니라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철학 책들을 읽으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각자의 노트나 일기에 써보는 순간 여러분은 철학 배우기와 짓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전공한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도 철학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평생에 걸쳐 일기 형태로 기록하였고, 그의 저서들은 이로부터 편집된 것들입니다. 

 

미국에서 비트겐슈타인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마친 뒤에 지도 교수님인 뉴턴 가버(Newton Garver, 뉴욕주립대학교(버펄로) 철학과)와 ‘Derrida and Wittgenstein (Temple University Press, 1994)’이라는 영문저서를 공동 집필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짓고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하면서 데리다로부터는 해체주의,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는 자연주의라는 관점을 얻게 되었고, 이로써 서양 현대철학을 저 두 관점의 대비로 이해하는 기틀을 잡게 되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살아 있다면: 논리철학적 탐구>는 그에 대한 저의 연구를 논리철학, 특히 모순론을 중심으로 갈무리해본 책입니다. 그의 전기, 중기, 후기의 저술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순이라는 화두에 연루되어 있음을 밝히면서 전기에서는 이 시기 그의 대표작인 <논리-철학논고>의 체계 내에서 모순을 부각시켜 보았습니다. 중기에서는 수학이나 논리학과 같은 형식 체계에서의 모순에 대한 그의 자유방임적인 태도를 검토하였으며, 후기에서는 철학 및 일상적 삶에서의 모순이 의미하는 바를 살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번득이는 비전과 수행자의 맑은 혜안을 지닌 독창적인 철학자였지만, 그가 남긴 책 원고에는 이 둘이 상보적(相補的)으로 온전히 부각되지는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유에 혹독하리만치 높은 수준으로 부과했던 엄밀성과 완벽주의로 말미암아 거의 모든 원고가 미완성에 그치다 보니, 원숙한 사유가 교향곡 스케일로 만개하지 못했다는 점도 부족함으로 느껴졌습니다.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느꼈던 아쉬움과 빈곤을 저는 하이데거로부터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서양 철학사 전체를 깊이 있게 소화하여 이로부터 본래적이고도 웅혼한 사유를 한껏 꽃피워냈습니다. 저는 삶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구도자적 태도를 존경했지만 하이데거가 펼쳐 보인 철학에 더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이데거는 제가 좋아하는 브루크너(Anton Bruckner)의 음악적 경지와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하이데거에게서 배운 바를 나름대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여 <크로스오버 하이데거: 분석적 해석학을 향하여>라는 연구서를 지어보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를 통해 트인 안목으로 제가 속한 동아시아의 심원한 사유를 들여다보았고, 우리 시대의 한국 철학자 및 예술가들과 교류했습니다. 그로부터 얻은 결실이 <동아시아 사유로부터: 시공을 관통하는 철학자들과의 대화>와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라는 두 권의 책입니다. 그에 이어 출간한 <우리 역사의 철학적 쟁점>은 우리의 상고사와 근・현대사를 철학적 관점에서 톺아본 작품입니다. 그 사이에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해제와 역주를 달아 번역 출간하였고, 그 작업의 과정에서 새로이 깨닫게 된 그의 자연주의적 면모를 <비트겐슈타인 새로 읽기: 자연주의적 해석>이라는 연구서에서 풀어내 보았습니다.

 

올해는 분석철학을 서양 철학사의 지평에서 조명해보는 <역사적 분석철학>이라는 연구서를 출간했고, 그동안 지어낸 책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해석학자 윤유석 선생(철학과 박사과정)과 함께 토론하는 북 토크(book talk) 형태의 강좌를 풀어 옮긴 <철학의 길: 대화의 해석학을 향하여>가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철학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길은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철학의 경우 세상에 대해, 주변에 대해, 자신에 대해 던지는 물음이 두드림에 해당하겠습니다.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사람에게 길은 열립니다. 그런데 길을 어느 방향으로 잡아 나갈지는 각자 처한 상황과 운명, 관심과 역량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갈 것입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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